정부의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 ‘e나라도움’에 최소 2000억원 이상의 보조금 데이터가 잘못 입력된 것으로 확인됐다. 구축에만 350억원이 투입된 시스템이다. ‘보조금은 눈먼 돈’이라는 오명을 탈피하기 위해 구축한 첨단 시스템이 정작 ‘엉터리 정보’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억이 2147억 둔갑'해도 모르는 e나라도움
◆“‘0’ 3개 실수로 더 붙여”

30일 한국경제신문이 e나라도움에 공시된 국고보조금 보조사업·보조사업자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 하광상공회의소라는 기관은 올해 고용노동부에서 2147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체 보조사업자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액수다. 하광상공회의소는 경기 광주시와 하남시를 관할하는 소규모 지방 상공회의소다. 이곳보다 보조금을 더 많이 받은 사업자는 새서울철도(6436억원) 농협손해보험(3852억원) 공항철도(3200억원) 한국철도공사(2963억원)뿐이었다.

보조금 내역을 보면 하광상공회의소에 청년인턴제 및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비 1085억원, 고용창출장려금 1062억원 등이 투입된 것으로 나온다. e나라도움에 따르면 고용부의 올해 청년인턴제·청년내일채움공제 보조금 예산 총액은 1119억원, 고용창출장려금은 1402억원이다.

만약 하광상공회의소의 공시가 맞다면 두 사업 보조금 예산의 대부분을 조그만 지방 상공회의소 한 곳이 대부분 가져갔다는 황당한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고용부에 확인한 결과 올해 하광상공회의소에 책정한 보조금 예산은 2억여원에 불과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하광상공회의소에서 금액을 올리면서 입력단위가 ‘천원’인 걸 모르고 뒷자리에 ‘0(영)’ 3개를 더 붙였다”고 해명했다. 실무자의 입력 착오로 2억1470만원이 2147억원으로 잘못 기재된 것이다.

◆2000억원 틀렸는데 아무도 몰라

관가에서는 하광상공회의소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e나라도움은 기획재정부가 보조금의 중복·부정수급을 방지하고 올바른 보조금 정보를 국민에 제공하기 위해 2014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350억원을 들여 구축했다. 연간 60조원에 이르는 보조금 정보를 통합·관리해 사업자 선정과 집행, 사후관리 등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알고리즘 등 빅데이터 기술을 토대로 부정수급 의심 사례를 50가지로 유형화해 검증하는 등 첨단 기능도 갖추고 있다. 보조금 사업자가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과 거래를 하는 등 의심 사례가 포착되면 즉시 부정수급 여부를 자동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가장 정확해야 할 보조금 액수 등 기초적인 데이터 입력은 보조사업자 등 일선 집행기관에 의존했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입력될 여지가 충분했다. 데이터 간 교차 검증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하광상공회의소의 잘못된 숫자 하나가 어디까지 연계됐는지 알 수가 없다”고 실토했다.

기재부는 지난 7월 e나라도움을 통해 보조금 집행내역을 정밀 분석해 부정수급이 의심되는 사례를 다수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하광상공회의소의 보조금 ‘1000배 뻥튀기’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됐다.

고용부는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기재부에 하광상공회의소의 데이터를 정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기재부는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입력현황 확인점검 등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