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경동시장은 1960년 경기도와 강원도 농민들이 한약재와 농산물을 가져다 팔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본관 신관 별관 등 3개 건물에, 점포 수 730여 개, 하루 방문객 7만 명에 이른다. 대표적 전통시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상인회에는 해묵은 고민거리가 있었다. 190개 점포가 들어갈 수 있는 신관 2~3층 절반이 비어 있다는 것. 해결할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대형마트와 온라인에서 주로 물건을 사는 젊은 소비자를 시장으로 끌어들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상인회는 고민 끝에 전통시장의 최대 경쟁자인 이마트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전통시장 40여곳 "어서와! 이마트 상생스토어"
◆“여기도 와달라” 40여 곳 입점 요청

지난 7월 상인회는 이마트가 당진 구미 안성 등에 문을 연 ‘노브랜드(이마트 자체상표) 상생스토어’를 유치하고 싶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석 달간 협의를 거쳐 25일 이마트와 경동시장, 동대문구는 ‘경동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개점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연내 문을 여는 상생스토어에선 경동시장의 주력상품인 신선식품을 제외한 노브랜드의 가공식품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게 된다. 30~40대 ‘엄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어린이 놀이터, 고객 쉼터도 설치하기로 했다.

이마트의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충남 당진어시장, 경북 구미 선산봉황시장, 경기 안성맞춤시장 등 세 곳에 상생스토어가 들어선 뒤 시장을 찾는 방문객과 시장 전체 매출이 늘어나는 등 활성화하자 전국의 전통시장으로부터 입점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부산 대구 마산 강원 등 전국 40여 개 시장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문의가 오고 있다”고 했다. 이마트는 현재 3개인 상생스토어를 내년 상반기까지 10개로 늘릴 계획이다.

◆규제 속으로 들어가는 전략

상생스토어의 성공은 ‘규제를 피할 수 없다면 규제 속으로 들어가자’는 이마트의 전략이 들어맞은 결과라는 게 유통업계의 평가다. 당진어시장에 상생스토어 1호점이 문을 연 지난해 8월 이마트의 전국 점포 수는 147개로 정점을 찍었다.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강력한 출점 규제가 이어지면서 “서울에선 도봉산 북한산 이외엔 점포를 낼 수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마트는 규제를 탓하기보다 규제의 보호 대상인 전통시장 속으로 들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비어 있는 전통시장 내 공간을 찾아 점포를 내고,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과 겹치지 않는 노브랜드의 제품을 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마트가 ‘상생스토어에선 시장의 주력 상품인 신선식품은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상인들도 대형 유통업체와의 ‘동거 우려’를 조금씩 거둬들였다.

◆시장 따라 맞춤형 매장 ‘적중’

이마트는 상인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여기에 각 시장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활성화 방안을 추가해 점포를 내고 있다.

구미 선산봉황시장은 상생스토어와 시장 내 청년창업가게인 청년몰이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냈다. 방문객이 상생스토어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청년몰을 거치도록 동선을 짰다. 상생스토어 개점 이전 11개에 불과하던 청년몰의 가게는 21개로 늘어 지금은 빈 공간을 찾을 수 없다.

이달 경기 여주 한글시장에 문을 여는 상생스토어는 일부 공간에서 신선식품을 판매한다. 이것도 상인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의류 잡화 화장품 등 공산품이 주력인 여주 한글시장엔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대신 패션 잡화 담배 국산주류 등은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안성맞춤시장의 상생스토어는 시장 내 빈 공간이 없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화인마트’ 매장 절반에 노브랜드 매장을 여는 방식으로 상생과 시장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