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자력산업이 이제 또다시 세계로 뻗어나갈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60년 원자력사(史)의 ‘산증인’인 정근모 KAIST 초빙석좌교수(전 과학기술처 장관·사진)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논의로 많은 국민이 원전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1958년 이승만 정부가 원자력법을 제정한 이후 지난 60년간 국내에 원전 기술을 처음 도입하고 기술 자립을 주도해 원자력업계의 ‘대부’로 불린다. 1971년 한국과학원(현 KAIST) 설립을 이끌었고 1982~1986년 한국전력기술 사장 시절엔 한국형 원전 개발로 기술 독립을 주도했다. 1989~1990년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을 맡아 ‘원자력외교’에 앞장섰고 1990년대엔 두 차례에 걸쳐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다.

그는 한국 원전산업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역량이 뛰어나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했다. 정 교수는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아일랜드(TMI)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한국은 원자로 표준화 사업을 본격화하는 계기로 활용했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유럽에서 탈(脫)원전 정책이 유행할 때는 안전성을 대폭 높인 제3세대 한국형 원전 모델(APR1400) 개발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이 탈원전 정책을 펼칠 때도 해외시장에서 반사이익을 얻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우리의 목적은 국내 시장이 아니다”며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체코에 이어 미국으로도 원전을 수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달 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IAEA 원자력에너지각료회의가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30개국 장·차관들은 한국이 2009년 수주한 UAE 원전 현장을 시찰하며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계약 규모만 20조원인 이 원전은 한국의 첫 수출 원전으로 신고리 5·6호기에 도입 예정인 ‘APR1400’이 적용됐다.

향후 최대 경쟁국으로는 중국을 꼽았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자국에 총 110기의 원전을 지어 세계 1위 원전 강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정 교수는 “원전산업은 최첨단 건설·운영·안전 기술을 결집시키는 대표적 ‘두뇌산업’”이라며 “한국이 해외 경쟁력을 갖추려면 좋은 인재들을 업계로 끌어모으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전향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교수는 또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축소를 권고한 것에 대해선 “위원회 소속 시민들은 전문가가 아니며 법적인 권한이 없다”며 “원전 비중은 민관 전문가가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