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속에서 핀 믿음과 사랑
시인, 여행에세이 작가, 라디오방송 작가, 영화감독….

이병률 시인을 수식하는 단어는 한두 개가 아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끌림》 등을 쓴 ‘밀리언셀러 여행작가’로 친숙한 그이지만 자신은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맨 앞에 놓이길 원한다.

서정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감수성으로 독자와 교감해온 이병률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나왔다.

이번 시집을 가로지르는 언어는 ‘혼잣말’이다. ‘시인의 말’을 통해 “마음 속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을 들으려고 가는 중”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조용히 자신의, 또 타인의 혼잣말에 귀기울인다.

‘내가 순수하게 했는데/나한테 이러믄 안 되지//나는 마음의 2층에다 그 소리를 들인다/어제도 그제도 그런 소리들을 모아 놓느라/나의 2층은 무겁다//내 옆을 흘러가는 사람의 귀한 말들을 모으되/마음의 1층에 흘러들지 않게 하는 일//그 마음의 1층과 2층을 합쳐/나 어떻게든 사람이 되려는 것/사람의 집을 지으려는 것’(‘지구 서랍’ 중)

시인은 홀로 바깥을 걸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오지 않은 이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모든 것에 과하게 속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무언가를 기꺼이 겪으려는 모습이 그의 시집 곳곳에서 비춰진다. ‘비밀 하나를 이야기해야겠다//누군가 올 거라는 가정하에/가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간다는 비밀 하나를//(중략)//내가 가끔씩 사라져서/한사코 터미널에 가는 것은/오지 않을 사람이 저녁을 앞세워 올 것 같아서다’(‘이구아수 폭포 가는 방법’ 중)

그러나 그의 혼잣말은 단순히 혼자 하는 말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그 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무심함을/단순함을/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이 넉넉한 쓸쓸함’ 중)

김소연 시인은 이 시집의 발문에서 “인간에게 믿음을 체험해보았건 아니건 간에 그는 끊임없이 인간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병률은 우리들 한가운데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사랑과 가까워지는 것에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