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그냥 공기업 아무 데나 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더라구요."

최근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일반 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 씨(29)가 하반기 대졸 공채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를 보고 내놓은 감상이다. 대학 3학년 때부터 6년간 공시족으로 살아온 김 씨에게는 채워야 할 자소서 항목이 너무 많고 낯설었다.

언제까지나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기보다는 일반 기업 취업으로 눈길을 돌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유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더 높은 벽에 부딪쳤다. 그는 "그 흔한 인턴, 아르바이트 경험도 없어 자소서에 쓸 거리가 없다. 학점도 엉망이라 막막하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공무원 시험이 '블랙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 탓에 선호도가 높은 공무원인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공무원 시험 1%대 합격률이 방증한다. 시험을 포기한 공시생들이 일반 취준생으로 마음을 고쳐 먹어도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태반이다.

공무원 시험은 국어, 영어, 한국사 등 주요과목 시험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학점, 인턴십 등 '스펙'은 비교적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 시험에 오래 매달려 직무경험 등 기업들이 요구하는 능력은 거의 쌓지 못하는 형편이다.

자연히 일반 채용 시장에서 경쟁자에 밀리곤 한다. 맞춤형 준비도 못한 데다 경력 공백 기간이 길고 나이까지 많아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14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기업 인사 담당자 3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3%가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돼도 연령 제한은 존재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다시 공시족으로 돌아가거나 민간기업 대신 공기업 준비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많다. 공기업의 경우 지원 기업과 직무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사, 법학, 행정학 등 시험 과목이 겹쳐 그나마 낫다는 이유에서다.

'공시 열풍'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4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윤모 씨(35)는 "매년 근소한 점수차로 떨어져서 포기를 못하겠다. 이 나이에 다른 곳 취직하기도 힘들어 시험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 방침과 맞물려 '공시 열풍'은 더 세졌다. 2017년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는 22만8368명이 지원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합격률은 바늘구멍이다. 지난해 총 30만5000여 명이 응시한 국가직 공무원 시험 합격자는 5372명, 합격률은 1.8%에 불과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