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동문
남한산성 동문
‘임금은 새벽에 남한산성에 들었다. 지밀상궁들은 도착하지 않았고, 당상관들은 걸레를 적셔서 행궁 안 처소의 먼지를 닦았다. 내행전 구들은 차가웠다. 군사들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성첩(城堞)으로 올라갔다.’ (김훈의 《남한산성》 中)

1636년 병자년 겨울.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진격해왔다. 강화도로 피란하려던 인조는 청나라 군사에 의해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들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14일부터 이듬해 1월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인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기록을 담았다.

다음달 3일 김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한다.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등 거물급 배우가 대거 출연하면서 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덩달아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된 조선시대의 산성, 남한산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남한산성 남문
남한산성 남문
◆병자호란의 상흔 담긴 장소

전체 길이가 11.76㎞에 이르고, 넓이는 2.3㎢에 달하는 남한산성은 경기도 도립공원(국가사적 제57호)으로 지정돼 있다. 경기 성남·하남·광주시, 서울 송파구 등 4개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맞닿은 경계에 있다.

기원전 6년(백제 온조왕 13년) 삼국시대부터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남한산성.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남한산성의 역사는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혀 항복하기까지 47일’에 갇혀 있다.

1636년 12월 청나라 10만 군대는 한양으로 향했다. 병자호란이다. 인조는 백성과 한양도성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이 산성도 청나라 대군의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음 해인 1637년 1월30일 새벽, 피신한 지 한 달 반여 만에 항복을 택한 인조는 산성의 서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적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아홉 차례 몸을 숙였다. 그렇게 항복을 표하며 인조는 목숨을 보존했고 전쟁은 끝났다.

◆가을 정취 가득한 둘레길

남한산성 둘레길에 올라서면 병자호란의 아픔을 함께한 옛 나무들과 마주할 수 있다. 총 다섯 개 코스로 이뤄진 남한산성 둘레길 중에서도 산성로터리에서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을 지나 다시 산성로터리로 이어지는 1코스가 가장 인기가 많다. 특히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등산객이 많이 오간다.

북문은 전승문(戰勝門)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과는 달리 병자호란 당시 군사들이 이 문을 나서 기습 공격을 했다가 대패했다. 이후 정조는 ‘다시는 전쟁에서 패하지 말자’는 뜻으로 이름을 전승문으로 고쳤다.

서문에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야경을 담기에도 좋은 장소다. 3.8㎞의 1코스를 다 돌려면 1시간20분가량 걸린다.

산성로터리에서 출발해 영월정, 숭렬전, 수어장대와 서문을 거쳐 국청사를 들러 다시 산성로터리로 돌아가는 2코스(2.9㎞·1시간)도 좋다. 산허리를 에두른 성벽을 걸으며 발밑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행궁 등 문화재 많아

남한산성에는 도처에 문화재가 많다. 대표적인 건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호)이다. 행궁이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란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1626년)에 건립됐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7일간 사용하던 공간도 이 행궁이었다. 이후에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했다. 남한산성 행궁은 국내 행궁 중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이다.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는 장수의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인조 2년(1624년)에 지어졌다. 함께 지어진 다섯 개의 장대 중에 유일하게 남았다. 원래는 1층으로 지었다가 1751년 영조의 명령으로 2층으로 증축했다. 현절사(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호)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당이다. 매년 음력 3, 9월 제향을 지낸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