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유명한 비문은 사실은 오역이다. 재기 넘친 그가 우물쭈물 살았을 리 없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장난기 어리게 써 놓은 것이다. ‘내 오래 살다 결국 묘비 세우는 날 올 줄 알았지’가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오역이 더 잘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오역된 비문을 곱씹어야 한다. 성취감에 취하고 인기에 편승해 우물쭈물하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밀월(honey moon) 기간이 끝나면서 두 통의 계산서가 날아들었다. 하나는 일자리 통계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주도 성장이 과연 우리에게 맞는 옷인가’하는 질문이다. 전자는 성적표이고 후자는 확인서다.

지난 8월 전체 취업자는 2674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만2000명 증가했다. 이는 4년6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월별 취업자 증가폭은 4월까지 40만 명대를 유지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5월부터 30만 명대로 내려갔고, 8월엔 2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국정과제 1호로 공표했다.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도 걸고 일자리 위원회도 발족시켰지만 첫 성적표는 낙제 수준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일자리 창출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일자리를 파괴하는 정책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내년부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져 기업들이 신규 인력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20%나 줄인다니 건설 분야 고용이 크게 축소될 것이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근로시간 단축, 산업용 전기료 인상, 대기업 법인세 인상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기업 처지에선 사람을 뽑을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실패를 단정하고 낙수효과를 부정하며 양극화를 과장했다. 그리고 ‘분배를 통한 성장’을 견지했다. 소득주도 성장은 그 파생이다. 국가 정책은 기업 전략과 다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따라서 남들이 안 간 길보다 다져진 길을 가는 것이 안전하다. 소득주도 성장을 채택하기 전에 ‘외국 성공사례’를 확인해 타당성을 점검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소득주도 성장은 한마디로 ‘분배를 통해 성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장을 이끌, 분배할 그 무엇은 누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답을 가정하고 거꾸로 문제를 내는 격이다. 만약 분배를 통해 창출된 소득이 다음 기(期)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분배 요구량보다 적으면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이는 ‘능력에 따라 생산한 것으로 필요에 따른 분배량을 채우지 못해 실패한 사회주의 실험’과 다를 바 없다.

소득주도 성장 논리에 따라 가계 주머니가 두둑해지도록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세 중소기업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지원하겠단다. 최저임금의 일부를 국고(國庫)로 보전해 주겠다는 것은 정부가 외부에서 태엽을 감아 주겠다는 것이다. 태엽을 감아 줘야 경제가 순환할 수 있다면 소득주도 성장은 이미 ‘자기 완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를 놓치고 있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우리 기업이 외국에 만들어 준 일자리 수와 외국 기업이 한국에 만들어 준 일자리 수를 보면 109만 개 대 7만 개다. 한국에 기업이 둥지를 틀어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기업을 내쫓으며 일자리 부족을 탓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미국과 한국의 직업 수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은 1만1000개(2011년 기준), 미국은 3만 개(2010년)다. 직업이 만들어져야 직업을 플랫폼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사고가 절대선일 수는 없다. 낙수효과가 없을 수 없다. 사적 계약이 낙수효과가 전달되는 통로다.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해 기업의 고용 능력을 높여야 한다. 서비스산업발전법 등의 입법도 요구된다. 기업을 살려 경제를 성장시켜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양극화가 완화된다. ‘투자견인 혁신성장’이 모범답안이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