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 좋아해…우리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어야"
청탁금지법 시행 1년 앞두고 '연착륙' 진단
김영란 "'이게 괜찮은가' 생각하게 하는 청탁금지법… 성공해야"
"많은 분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 법이니 반드시 성공해야만 합니다."

한국 사회의 관행과 문화를 뒤흔든 '김영란법'의 틀을 닦은 김영란(61)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이 법의 성공에 대한 열망과 낙관적 전망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 서강대 법률전문대학원(로스쿨) 석좌교수로 있는 김 전 위원장은 19일 마포구 서강대의 연구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오는 28일 시행 1주년을 맞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연착륙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 법의 가장 좋은 점은 무심코 뭔가 하는데 '이게 괜찮은 것인가'라고 생각해보게 된다는 점"이라며 "우리에게 내면화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환기해준다는 점에서 잘 연착륙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 앞서 수강생 47명의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매주 모의시험 답안을 채점해야 한다면서도 "법관 시절과 비교하면 시간은 더 자유롭게 쓴다"며 "최근엔 레베카 솔닛의 책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관이 쓴 '헌법의 약속'이라는 책을 읽었다"고 근황을 전했다.

김 교수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 청탁금지법상의 식사·선물·부조 상한선 액수인 '3·5·10만원' 상향 조정 요구에 대해 "금액이 중요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절대 못 바꿀 숫자라거나 바꿔야만 할 숫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우리가 가능하면 특별한 이유 없이 공직자에게 선물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금액을 따지는 것은 마치 그것이 본질인양 오해하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어 "청탁금지법 이전에 공무원 행동강령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3·3·5만원'이었다"며 "지금 청탁금지법의 부작용이 부풀려지는 것은 이전에 행동강령이 너무 안 지켜졌음을 자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영란 "'이게 괜찮은가' 생각하게 하는 청탁금지법… 성공해야"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부 업계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법이 성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교수는 "화훼업계나 고가 음식점 등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그래서 2년의 유예기간을 두려고 했는데 그 기간이 1년 반으로 줄었고, 그 기간에 정책 지원이 미미했다.유예기간이 너무 헛되이 넘어갔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길게 보면 우리가 꽃 등을 선물하는 소비 방식이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라며 "조금 더 천천히 바뀌면 그분들에겐 좋겠지만 결국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분이 동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영향을 받는) 그분들이 힘드시더라도 이겨내 주셨으면 좋겠고, 업종도 다양화하고 정책 지원도 받으셔서 하루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청탁금지법은 그런 희생을 딛고 일어선 것이니 오히려 성공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사람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된다고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사립학교도 법률 적용 대상에 포함된 점을 언급하며 "특히 젊은 여성들이 좋아한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라며 "이 법의 성공 요인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신다는 것"이라고 꼽았다.

김 교수는 청탁금지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권위적인 문화를 타파하는 동시에 '우리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었습니다.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다 보니 수장이 누구냐에 따라 기관이 엄청나게 바뀌더라고요.여기서 할 말을 하면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 되는 병폐가 한국의 조직들을 건강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투명성기구(TI)가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보는 항목이 자국민의 자국 평가"라며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 법이 연착륙하면 우리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고, 타인도 우리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탁금지법은 친한 사람에게 '노'라고 못하는 문화, 권위적인 문화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깔린 법입니다.시스템을 잘 만들어도 시스템을 무시하거나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요.이 법이 건강한 조직문화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좋겠습니다.너무 꿈이 큰 것인가요?"
김영란 "'이게 괜찮은가' 생각하게 하는 청탁금지법… 성공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