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유기동물보호소에 맡겨진 유기견 수는 6만3602마리로 매년 증가 추세다. 한경DB
작년 유기동물보호소에 맡겨진 유기견 수는 6만3602마리로 매년 증가 추세다. 한경DB
지난달 초 제주도를 찾은 박모씨(32)는 새벽 산책에 나섰다 길가에 놓인 한 종이박스를 발견했다. 박스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이상해 가까이 다가간 박씨는 내용물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박스 속엔 진돗개 잡종으로 추정되는 강아지 세 마리가 담겨 있었다. 박씨의 신고로 이들 강아지는 곧바로 인근 유기동물보호소로 옮겨졌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맞았지만 한 해 10만 마리 이상의 개가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다. 이들 유기견 중 일부는 야생에서 공격 본능을 회복한 ‘들개’로 변신해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관련 시장 규모가 2조원에 달하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을 믿고 맡길 곳이 많지 않은 게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한 해 버려지는 반려견 10만 마리 이상 추산

[경찰팀 리포트] 반려동물 1000만 시대, 버려지는 개도 연 10만마리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기동물보호소에 맡겨진 유기견 수는 △2014년 5만9180마리 △2015년 5만9633마리 △2016년 6만3602마리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하루 174마리의 유기견이 보호소에 입소한 셈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발견되지 않거나 개인이 맡아 기르게 된 유기견까지 포함하면 한 해 10만 마리 이상이 버려지고 있다고 추정한다.

유기동물보호소는 이미 과포화 상태다. 동물보호단체 ‘케어’에 따르면 전국 보호센터 194곳 중 52%에 달하는 100곳에 한 해 100마리 이상의 유기견이 새로 들어온다. 시설이 크고 보호 환경이 좋은 곳으로 알려진 몇몇 보호소엔 한 해 3000마리가 넘는 유기견이 맡겨진다. 보호센터에 들어오는 유기견 중 원주인에게 돌아가거나(14.5%) 새 주인을 찾는 경우(32%)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질병으로 자연사하는 비율이 22.7%, 안락사하는 경우가 20%에 달한다.

키우던 반려동물을 데리고 유기동물보호소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부분 새끼 시절 귀여움에 반해 분양받았다가 몸집이 커져 키우기 어려워진 경우다. 예를 들어 귀여운 생김새를 자랑하는 로트와일러종은 인기 분양견에 속하지만 1년이면 거의 10세 아이만큼 몸집이 커진다. 인터넷 애견인 카페엔 로트와일러처럼 몸집이 커져 좁은 집에서 키우기 어려워진 1~2세짜리 맹견이 빈번하게 매물로 올라온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다가 예상치 못한 새끼들을 보호소로 데려오기도 한다. 수용력을 초과해 분양을 거절하면 이런 개 중 일부는 골목이나 야산에 버려져 야생 들개가 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북한산 관악산 등 서울 시내 야산에서 배회하는 들개만 150여 마리로 추산된다.

유명무실한 등록제… 보험 가입률도 미미

유기견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2014년 마련한 동물등록제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동물등록제는 전국 시·도지역 내 생후 3개월 이상 반려견의 등록을 의무화한 제도다. 등록 시 견주 정보, 위치추적센서가 들어 있는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개의 몸에 주입하거나 외장칩 또는 인식표를 목줄에 달도록 했다. 실종견의 조속한 발견을 돕고 개를 버린 사람에겐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현재까지 등록견 수는 2015년 기준 97만7000마리로 전체 추정 반려견 수 500만 마리의 20% 수준이다. 2015년 기준 등록된 개 중 내장형 칩을 장착한 건 48%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유기견 상당수가 목줄 없이 버려질뿐더러 내장형 칩을 장착해도 제거하기 쉬워 개를 버린 견주를 찾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강아지는 전국 4500곳으로 추정되는 일명 ‘강아지 공장’에서 생산된다. 생산된 강아지의 90%에 달하는 30만 마리의 강아지가 경매장으로 향한다. 경매장에서 팔린 강아지는 전국 각지 수천 곳에 달하는 동물병원·애견숍으로 옮겨져 소비자들에게 분양된다.

반려동물 시장 규모 2조원 시대에도 열악한 반려동물 인프라가 유기견을 양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려동물 보험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지만 가입률은 0.01%로 극히 낮은 편이다. 현재 반려동물 보험 상품을 운용하는 보험사는 3곳에 불과하다. 도난 및 실종, 돌봄비용까지 보장하는 선진국과 달리 보장 범위도 질병 상해에 국한돼 있다. 보험이 적용되는 동물병원도 많지 않아 보험 가입의 실익이 적다는 평가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