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치적·셸컴퍼니 이용해 국적 위장…추적도 어려워 단속에 난항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 제재가 국제해운시스템의 허점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또 나왔다.

북한이 선박 국적을 합법적으로 위장하고 복잡한 유통·소유 구조를 활용해 거래를 감추고 있어 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북한 국적으로 의심되는 선박 수백 척이 홍콩에 기반을 둔 해운회사들에 의해 소유·운영되고 있다며 이들 선박은 국기를 바꾸거나 소유권을 교체하는 방법으로 제재를 피하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안보 분야 연구기관인 C4ADS도 북한과 연계된 사업을 하는 기업 248곳 중 160곳이 홍콩에 등록돼 있다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하며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러한 홍콩 선박회사들은 대다수 중국 국적자가 보유한 것으로 등록돼 있으나 이중 몇 곳은 북한인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FT는 전했다.

이들 회사는 편의치적(便宜置籍·Flags of Convenience) 제도를 이용하거나 '셸컴퍼니'(shell company·유령회사)를 세우는 방법으로 선박의 국적을 위장한 채 버젓이 북한의 교역활동을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편의치적이란 해운업체들이 실제 운영하는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규제가 느슨한 제3국에 등록하는 것으로, 파나마, 라이베리아, 마셜군도, 홍콩 등의 국가가 주로 이용된다.

앞서 마셜 빌링슬리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보는 파나마와 자메이카 선적의 북한 배가 러시아와 중국에 북한산 석탄을 실어나른 정황이 포착됐다며 미국 정부는 제재를 피하기 위한 기만적인 관행을 단속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홍콩 내에서 이런 의혹을 받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선박회사는 '유니온 링크 인터내셔널'이다.

FT는 유니언 링크 인터내셔널 소속 선박 중 북한 국기를 달고 있는 '돌핀 26'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망을 우회하기 위해 쓰는 수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전했다.

유럽선박정보시스템(Equasis)에 따르면 돌핀 26은 지난 8년간 여섯 차례나 선주와 선장을 교체했고, 이름도 세 번 바꿨다.

또 배에 다는 국기도 지난 5년간 네 번이나 교체했다.

같은 회사에 속한 '오리엔탈 레이디'도 비슷한 수법을 썼는데 이 선박은 지난 2003년 이후 국기를 6번이나 바꿨고, 이중 두 번은 북한 국기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운용되게 된다면 선박회사 배후에 있는 이들의 활동을 포착하거나 추적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고 입을 모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1일 금수 물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에 대해 공해상 강제 검색을 가능하게 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상황에서 이러한 불투명한 해운시스템으로 북한 선박에 대한 단속은 더욱 난항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로 활동했던 윌리엄 뉴콤 전 미 재무부 자문관은 "이 회사들이 진정한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투입하는 시간과 에너지, 돈을 생각한다면 그들(북한)에게 이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viv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