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임금체계·노동법 개선 없이 통상임금 문제 못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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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소송대란 해법 없나
신의칙(信義則) 인정 안된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산업계 '먹구름'
복잡한 임금체계와 이를 조장하는 낡은 노동법이 근본원인
상여금 비중 높은 대기업 노조만 혜택…양극화 심화 우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
신의칙(信義則) 인정 안된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산업계 '먹구름'
복잡한 임금체계와 이를 조장하는 낡은 노동법이 근본원인
상여금 비중 높은 대기업 노조만 혜택…양극화 심화 우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말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판결을 내놨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서 경영상 어려움 등의 사유가 있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의칙 적용은 배제했다. 대부분 신문은 이튿날 톱뉴스로 다뤘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대표 기업에 미칠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관련 소송이 줄을 잇는데도 법원마다 판결이 엇갈려서다. 이번 통상임금 사태는 복잡한 임금체계가 근본 원인이지만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금은 보통 ‘기본급+수당+상여금’으로 구성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근로자가 받는 급여명세서를 보면 훨씬 복잡하다.
임금체계·노동법 개선 없이 통상임금 문제 못 푼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기업과 노사 간 임금 협상의 햇수가 거듭될수록 알쏭달쏭한 이름의 수당, 상여금들이 더해진다. 그럴수록 기본급 비중은 낮아진다. 종업원 1350명이 일하는 한 제조업체 사례를 보자. 기본급은 전체 임금의 22.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당과 상여금이다. 전체 임금의 5.9%를 차지하는 수당은 위생수당, 근속수당, 가족수당, 김장보너스를 포함해 무려 11가지나 된다. 이 밖에 연·월차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같은 초과수당이 28.1%다. 나머지 43.8%는 상여금이다. 짝수 달과 설·추석·휴가 때 50~100%씩 지급되는 정기상여금과 성과급, 일시금 등 변동상여금으로 가짓수도 만만찮다. 임금체계가 복잡해진 것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더 받으려는 근로자와 무리한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사측의 이해관계, 교섭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학계 설명이다. 모호한 노동법 규정과 노동계를 의식한 노동행정, 법원의 과도한 근로자 보호 기준제시 등도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지목된다.
노동전문위원수당·상여금이 더 많은 임금체계
노동법에 규정된 임금에는 최저임금, 통상임금, 평균임금이 있다. 제도 도입 취지가 다른 만큼 산입범위, 산정방법도 제각각 다르고 복잡하다. 노동법을 집행하는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도 수당 이름만 들어서는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급조건과 시기, 대상,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가족수당만 봐도 그렇다. 근로자의 복지후생을 위해 지급되는 가족수당은 최저임금에서는 제외된다. 하지만 부양가족 수와 관계없이 전체 근로자에게 지급되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반면 부양가족 수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면 이때는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일일이 따져보는 과정을 거쳐도 수당에 따라서는 나중에 법원에서 결과가 뒤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반인이 통상임금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산하는 것은 기대난이다.
통상임금은 원래 초과근로나 야간근로에 지급하는 가산임금(50%)을 계산하기 위해 사전에 근로자와 사용자 간에 정해진 임금이다. 가산임금 계산을 위한 도구적 개념인 셈이다. 그러자면 사전에 명확히 개념이 정해져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통상임금 제도의 난맥을 부른 사유로는 먼저 ‘불명확한 법령’이 꼽힌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시행령에만 규정돼 있고 정작 중요한 산정 방법은 행정해석에 맡겨져 있다. 정부의 행정해석과 다른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현장에선 바로 혼란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의 파장도 같은 맥락이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금아리무진 판결에서 한 달을 넘겨 지급되더라도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했다. 그 전까지 적용되던 해석 기준을 뒤집은 것이다. 상여금은 1969년 5월19일부터 노동청의 예규로 평균임금에는 포함하되 통상임금에서는 제외했다. 이후 40여 년간 이어진 판단 기준이다. 이어서 2013년 말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보도자료까지 내며 통상임금 판단 기준으로 정기성, 고정성, 일률성을 제시했다. 이 세 기준만 충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보도자료에서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수당의 명칭과 특징을 일일이 들어가며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설명했다.
오락가락 판결도 문제
산업현장에는 큰 혼란이 불거졌다. 앞서 본 제조업체 사례에서 전체 임금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상여금 가운데 상당한 부분이 이제는 통상임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빠져 있어 초과·연장근로수당을 적게 받았다며 이를 한꺼번에 지급하라는 소송이 줄을 이었다. 기아차도 그중 하나다.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판결에서 기업 존립이 위태로운 경우 신의칙에 따라 미지급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를 내놨지만 하급심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는 엇갈리고 있다.
산업 현장 혼란이 극심한데도 정부 조치는 대법원 판결 내용을 그대로 풀어쓴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내놓은 게 전부다. 통상임금의 의미와 범위를 명확히 법률에 규정하자며 정부와 당시 여당(새누리당)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야 대립과 노사 이견에 막혀 국회 논의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지난 2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냈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통상임금 문제는 1차적으로 국회 입법을 통해 정리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더라도 과거에 발생한 법률문제까지 소급 적용할 수 없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여기부터는 사법부 몫이다. 통상임금 판결을 촉발한 금아리무진은 대구에 있는 종업원 160여 명의 버스회사다. 종업원 2만7000여 명인 기아차를 같은 논리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기아차는 강력한 노조 조직력으로 매년 임금을 올려와 근로자 평균 연봉이 1억원에 가깝다. 노사 모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알고 매년 임금교섭을 해왔다. 국민의 비판여론과 협력·부품업체 근로자들의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국회가 입법을 통해 정리해야
현재의 법리대로라면 대기업 근로자만 더 유리해진다. 대기업일수록 상여금 비중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고정상여금은 종업원 30명 미만 기업에서는 5%를 밑돈다. 반면 종업원 500명 이상 대기업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고정상여금이 21.1%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초과수당이 대폭 늘어나면 결국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더 커지는 구조다.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통상임금이 확대될 때 연간 임금 총액이 종업원 30명 이하 기업은 2만~20만원가량 늘어나는 데 반해 500명 이상 기업에서는 419만원 늘어난다.
시대 변화에 맞춰 법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기업 경영여건, 근로자의 직업생활과 생애주기에 맞도록 임금체계도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법 체계는 아직 산업화 시대의 낡은 모습 그대로다. 초과근로에 50%의 높은 할증률과 그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제도는 장시간 근로와 소송 남발을 조장한다. 그런데도 정부나 국회 모두 노사 눈치를 보느라 세월만 보낸다. 노사도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보다 손쉬운 소송에 나서고 있다. 복잡한 임금체계를 정리하지 않는 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해소보다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
임금체계·노동법 개선 없이 통상임금 문제 못 푼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기업과 노사 간 임금 협상의 햇수가 거듭될수록 알쏭달쏭한 이름의 수당, 상여금들이 더해진다. 그럴수록 기본급 비중은 낮아진다. 종업원 1350명이 일하는 한 제조업체 사례를 보자. 기본급은 전체 임금의 22.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당과 상여금이다. 전체 임금의 5.9%를 차지하는 수당은 위생수당, 근속수당, 가족수당, 김장보너스를 포함해 무려 11가지나 된다. 이 밖에 연·월차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같은 초과수당이 28.1%다. 나머지 43.8%는 상여금이다. 짝수 달과 설·추석·휴가 때 50~100%씩 지급되는 정기상여금과 성과급, 일시금 등 변동상여금으로 가짓수도 만만찮다. 임금체계가 복잡해진 것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더 받으려는 근로자와 무리한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사측의 이해관계, 교섭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학계 설명이다. 모호한 노동법 규정과 노동계를 의식한 노동행정, 법원의 과도한 근로자 보호 기준제시 등도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지목된다.
노동전문위원수당·상여금이 더 많은 임금체계
노동법에 규정된 임금에는 최저임금, 통상임금, 평균임금이 있다. 제도 도입 취지가 다른 만큼 산입범위, 산정방법도 제각각 다르고 복잡하다. 노동법을 집행하는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도 수당 이름만 들어서는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급조건과 시기, 대상,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가족수당만 봐도 그렇다. 근로자의 복지후생을 위해 지급되는 가족수당은 최저임금에서는 제외된다. 하지만 부양가족 수와 관계없이 전체 근로자에게 지급되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반면 부양가족 수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면 이때는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일일이 따져보는 과정을 거쳐도 수당에 따라서는 나중에 법원에서 결과가 뒤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반인이 통상임금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산하는 것은 기대난이다.
통상임금은 원래 초과근로나 야간근로에 지급하는 가산임금(50%)을 계산하기 위해 사전에 근로자와 사용자 간에 정해진 임금이다. 가산임금 계산을 위한 도구적 개념인 셈이다. 그러자면 사전에 명확히 개념이 정해져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통상임금 제도의 난맥을 부른 사유로는 먼저 ‘불명확한 법령’이 꼽힌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시행령에만 규정돼 있고 정작 중요한 산정 방법은 행정해석에 맡겨져 있다. 정부의 행정해석과 다른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현장에선 바로 혼란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의 파장도 같은 맥락이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금아리무진 판결에서 한 달을 넘겨 지급되더라도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했다. 그 전까지 적용되던 해석 기준을 뒤집은 것이다. 상여금은 1969년 5월19일부터 노동청의 예규로 평균임금에는 포함하되 통상임금에서는 제외했다. 이후 40여 년간 이어진 판단 기준이다. 이어서 2013년 말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보도자료까지 내며 통상임금 판단 기준으로 정기성, 고정성, 일률성을 제시했다. 이 세 기준만 충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보도자료에서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수당의 명칭과 특징을 일일이 들어가며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설명했다.
오락가락 판결도 문제
산업현장에는 큰 혼란이 불거졌다. 앞서 본 제조업체 사례에서 전체 임금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상여금 가운데 상당한 부분이 이제는 통상임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빠져 있어 초과·연장근로수당을 적게 받았다며 이를 한꺼번에 지급하라는 소송이 줄을 이었다. 기아차도 그중 하나다.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판결에서 기업 존립이 위태로운 경우 신의칙에 따라 미지급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를 내놨지만 하급심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는 엇갈리고 있다.
산업 현장 혼란이 극심한데도 정부 조치는 대법원 판결 내용을 그대로 풀어쓴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내놓은 게 전부다. 통상임금의 의미와 범위를 명확히 법률에 규정하자며 정부와 당시 여당(새누리당)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야 대립과 노사 이견에 막혀 국회 논의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지난 2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냈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통상임금 문제는 1차적으로 국회 입법을 통해 정리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더라도 과거에 발생한 법률문제까지 소급 적용할 수 없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여기부터는 사법부 몫이다. 통상임금 판결을 촉발한 금아리무진은 대구에 있는 종업원 160여 명의 버스회사다. 종업원 2만7000여 명인 기아차를 같은 논리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기아차는 강력한 노조 조직력으로 매년 임금을 올려와 근로자 평균 연봉이 1억원에 가깝다. 노사 모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알고 매년 임금교섭을 해왔다. 국민의 비판여론과 협력·부품업체 근로자들의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국회가 입법을 통해 정리해야
현재의 법리대로라면 대기업 근로자만 더 유리해진다. 대기업일수록 상여금 비중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고정상여금은 종업원 30명 미만 기업에서는 5%를 밑돈다. 반면 종업원 500명 이상 대기업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고정상여금이 21.1%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초과수당이 대폭 늘어나면 결국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더 커지는 구조다.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통상임금이 확대될 때 연간 임금 총액이 종업원 30명 이하 기업은 2만~20만원가량 늘어나는 데 반해 500명 이상 기업에서는 419만원 늘어난다.
시대 변화에 맞춰 법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기업 경영여건, 근로자의 직업생활과 생애주기에 맞도록 임금체계도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법 체계는 아직 산업화 시대의 낡은 모습 그대로다. 초과근로에 50%의 높은 할증률과 그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제도는 장시간 근로와 소송 남발을 조장한다. 그런데도 정부나 국회 모두 노사 눈치를 보느라 세월만 보낸다. 노사도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보다 손쉬운 소송에 나서고 있다. 복잡한 임금체계를 정리하지 않는 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해소보다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