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업계서 맹활약하는 전 금융회사 수장의 아들들
과거 한국 금융계를 풍미했던 전 은행장과 증권사 사장의 아들들이 투자은행(IB)업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계에선 금융산업의 중심이 간접금융 시장에서 직접금융 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4위 시멘트 회사인 한라시멘트와 5위 택배회사인 로젠택배를 동시에 매각하면서 주목받은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어링캐피탈의 김한철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1993~1994년 옛 서울신탁은행 행장을 지낸 김영석 씨다. 1959년 창립한 서울신탁은행은 1994년 ‘큰손’ 장영자 씨 어음부도사건 등을 겪으면서 1995년 서울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서울은행은 이후 하나은행에 넘어갔다.

김영석 전 행장의 서울대 상대 14회 동기 중엔 1995~1996년 삼성증권 사장을 지낸 임동승 씨(현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객원교수)가 있다. 두 집안의 인연은 자본시장에서 많이 알려졌다.

임 전 사장의 아들은 최근 유럽계 증권사 UBS의 한국 대표로 선임된 임병일 전 크레디트스위스(CS) 지점장이다. 임 전 사장과 임 대표는 각각 한국은행과 행정고시를 수석합격했다. 임 대표와 김 대표는 CS에서 선후임으로 인연을 맺은 뒤 최근 IB업계와 PEF업계로 길이 갈렸다.

지난 6월 카카오택시·카카오드라이버 등의 사업부를 거느린 카카오모빌리티 지분 30.7%를 5000억원에 인수하며 한국에 재진출한 글로벌 4대 PEF 텍사스퍼시픽그룹(TPG)에도 전 은행장의 아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영회 제12대(2001~2003년) 수출입은행장(현 아시아자산신탁 회장)의 아들인 이승준 전무다. 골드만삭스에서 투자은행가로 근무했던 이 전무는 2014년 TPG로 이직하면서 PEF업계에 발을 디뎠다.

JP모간 BNP파리바 HSBC 대우증권 삼성증권 외환은행 등 국내외 증권사와 은행을 두루 거친 김지욱 신한금융지주 글로벌자본시장부장(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의 부친은 2000~2001년 국민은행장을 맡았던 김상훈 한국CFO협회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원장 시절 금감원 부원장을 거쳐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까지 역임했다.

신한금융지주의 해외전략과 인수합병(M&A) 등 신사업 발굴을 책임지고 있는 김 부장은 과거 20여 년 동안의 투자은행가 경험을 살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 역사를 다룬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경제신문에 칼럼을 게재하는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프랑스계 IB인 크레디아그리콜 서울지점 심형찬 대표는 심훈 전 부산은행장(2003~2006년)의 아들이다. IB업계 관계자는 “IB업계에서 활약 중인 이들 가운데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금융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다 어릴 때 해외생활을 경험하면서 국제 감각을 익힌 사람들이 많다”며 “IB와 PEF 등이 금융 시장의 주역이 될 것이란 걸 일찌감치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