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대규모로 삭감한 10개 사업 중 절반 이상이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산업 육성과 산업경쟁력 기반 구축 예산도 지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반면 복지는 눈에 띄는 삭감 없이 전반적으로 예산이 대폭 늘었다. 당장의 복지 확대에 치중한 나머지 미래 성장 잠재력을 희생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삭감액 톱10 중 6개가 SOC… 신산업·산업경쟁력 예산도 '싹둑'
도로·철도 예산 ‘싹둑’

한국경제신문이 5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8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7474개 전체 사업 리스트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올해 대비 내년도 예산안에서 삭감액이 가장 큰 10개 사업 중 6개가 SOC였다.

민자유치건설 보조금이 SOC 예산 중 감액 규모가 가장 컸다. 민자사업자가 짓는 도로와 철도 등 토지보상비 지급에 쓰이는 이 예산은 올해 8536억원에 달했으나 내년엔 4630억원(-54.2%) 축소된 3906억원만 반영됐다. 새 정부 출범 후 민자 SOC 사업을 잇달아 재정 사업으로 전환하는 기조와 맞물려 삭감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충북 단양군 도담에서 경북 영천시를 잇는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도 7080억원에서 2560억원으로 4520억원(-63.8%)이나 삭감됐다. 서울 청량리~영천 간 소요시간을 현재 4시간40분에서 1시간50분으로 단축하기 위한 사업이다. 2020년 개통을 목표로 현재 공정률 34%를 기록하고 있으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밖에 포항~삼척 철도 건설(-3823억원), 울산~포항 복선전철(-2878억원), 당진~천안 고속도로 건설(-2349억원), 부산~울산 복선전철(-2191억원) 등도 대거 예산이 줄었다.

철도 사업 64% 감액

기재부는 도로·철도 예산 삭감 이유에 대해 “민원이나 사업계획 변경 등으로 공사가 지연돼 예산 이월이 발생한 사업이 많았다”며 “이월액이 충분한 만큼 지연에 따른 공사비를 감액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 등은 불만이 적지 않다. 당장 예산 삭감으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 등 추진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비록 재정당국이 집행률 부진에 따른 이월액이 충분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상당수 SOC 사업을 축소하거나 접어야 할 상황이 닥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SOC 투자는 적정선에서 관리하고 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 확충에 힘쓰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내년 예산안에서 철도는 전체 70개 사업 중 45개(64%), 도로는 113개 중 66개(58%) 사업 예산이 삭감됐다.

SOC 이외에선 주택도시기금 주택구입·전세자금융자 사업 예산이 1조7674억원(-19.1%) 줄어 삭감액이 가장 컸다. 정부 융자를 취급 은행에 금리 차이만 보전해주는 이차보전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소요예산이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임대주택리츠 출자는 공공임대와 뉴 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등 신규 물량 축소로 4372억원 줄었다.

증액 ‘톱10’ 중 복지 9개

예산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SOC뿐만이 아니다. 산업 육성 관련 예산 역시 대규모 삭감이 이뤄졌다. 산업경쟁력기반 구축 사업은 21개 중 14개가 감액됐다. 시스템산업기술개발기반 구축(-305억원), 소재부품산업기술기반 구축(-116억원) 등이 줄었다. 신산업 진흥 역시 16개 중 디자인혁신역량강화(-29억원), 나노융합산업핵심기술개발(-21억원), 창의산업전문기술개발(-18억원) 등 11개가 감액됐다.

반면 복지 분야는 190개 사업 중 88개만 깎여 삭감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증액도 복지 일색이었다. 기초연금(1조7438억원), 국민연금(1조6782억원), 구직급여(8221억원) 등의 예산이 크게 늘었다. 예산이 크게 늘어난 상위 10개 사업 중 9개가 복지성 급여·사업 지출이었다.

이에 힘입어 복지·노동 예산은 올해 129조5000억원에서 내년 146조2000억원으로 12.9% 증액됐다. SOC는 같은 기간 22조1000억원에서 17조7000억원으로 4조4000억원(-20%) 줄어든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성장의 60%가 건설 투자에서 나오는데 SOC 예산을 20% 넘게 삭감한 것은 지나친 일”이라며 “내년도 예산은 ‘현금살포형·성장 무시 예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