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이익을 수정해 다시 발표했는데 담당 회계법인은 이런 회계처리를 적정한 것으로 동의했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사건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복되는 수주산업의 분식 논란 때문인지, 시장에서는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왜 이렇게 반복되는 분식회계의 적폐는 해소되지 않는가.

분식회계 적폐의 근원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기업의 투명한 회계처리를 유도하기 위해 1980년 말에 제정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이다. 외감법은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가 회계사를 통해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제정했다. 그런데 이 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의 회계투명성은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데 이를 회계사의 책임으로 전가시킴으로써 분식회계의 적폐가 시작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적폐가 기업 스스로 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고 회계사가 기업을 대신해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다시 그것을 회계사 스스로 감사하는 오랜 관행이다. 과거 대형 분식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외감법을 강화한다고 수없이 고쳐 왔으나, 오늘날 기업규모와 경제환경에서 30여 년 전 국보위에서 제정한 외감법을 통해 분식회계의 적폐를 해소할 순 없었다.

외감법 체계가 분식회계를 근절할 수 없는 이유는 기업의 분식회계를 제어할 수 있을 만큼 과거 30여 년 동안 기업과 비교해 회계법인의 경제적·사회적 위상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례로 한 대형 회계법인의 발표에 따르면 회계사가 분식회계를 발견하는 경우는 4%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늘날 회계법인의 약해진 감사능력 책임과 원인을 논하기 이전에 그것이 현실이라면 그에 맞는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계 11위라는 한국의 경제규모에 맞게 해외 선진 자본국가들처럼 기업의 회계투명성이 기업 스스로의 통제하에 담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기업의 내부 통제장치인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회계분식과 외부감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면책 등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부지시라면 분식회계도 서슴지 않는 기업의 악습을 끊기 위해서는 회계사 중심의 외감법에 대한 일부 개정이 아니라 기업 중심의 법률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반복돼온 분식회계에 대한 적폐청산의 시작이다.

현재의 외감법이 분식회계의 발생을 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예방보다 사후 중심의 감독체계이기 때문이다. 현행 외감법상 분식회계의 의혹만으로는 감독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 분식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감독당국이 왜 이를 예방하지 못했느냐는 질타 등이 있지만, 현재의 외감법 체계에서는 법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예방적 감독에 한계가 있다. 반면에 해외 선진 자본국가들은 2001년 미국 엔론 등의 분식사건 이후 이런 예방적 감독기능이 강화돼 왔다. 예를 들어 영국의 회계감독기구로 2004년에 설립된 금융재무보고위원회(FRC)는 의심되는 회계처리에 대해 회계법인이 아니라 해당 기업에 직접 해명 또는 수정을 요구하고, 적정한 대응이 없을 경우 제재 절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법적 체계가 마련됐다. 이런 감독활동에 대한 정보공유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한 게 특징으로, 예방적 감독이 이해관계자들과의 개방적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반복되는 분식회계의 적폐를 끊기 위해서는 감독체계도 과감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개방적 소통의 리더십이 요구되며, 감독당국이 예방적 감독을 법적인 제한 없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외감법 중심의 법적 체계에서 전면적으로 탈피해야 한다. 분식회계의 적폐 청산은 회계투명성의 주체를 기업에 되돌려줄 사회적 의지와 확고한 리더십이 있을 때 이뤄질 수 있다.

정도진 < 중앙대 교수·한국조세재정연구원·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소장 dj1730@ca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