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경매법정엔 예비 응찰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100석 규모의 경매법정을 가득 메웠던 ‘8·2 부동산 대책’ 이전의 분위기와는 딴판이었다.

지난달 2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경매법정도 응찰자들이 적어 평소보다 한산했다. 이날 용산구 서계동의 22㎡ 다세대주택, 서대문구 연희동의 115㎡ 아파트 등 신건으로 나온 주거시설은 대부분 유찰됐다. 전업투자자 황모씨(51)는 “(8·2 대책) 발표 전이었다면 응찰자 예닐곱 명은 붙었을 물건도 죄다 유찰됐다”며 “대출이 어려워진 데다 앞으로 시세가 오른다는 보장도 없으니 다들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경매 응찰자 올 들어 최저

8·2 대책 이후 법원경매시장의 열기도 빠르게 식고 있다. 부동산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거시설의 낙찰가율은 지난 7월 96.7%에서 지난달 92.1%로 내려갔다. 평균 응찰자 수도 7월 7.7명에서 지난달 4.2명으로 줄었다. 올 들어 최저 수준이다.

8·2 대책 이전엔 낙찰가가 시세와 맞먹거나 더 높게 나오는 경우도 예사였지만 이젠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경매에 나온 서울 아파트 62건 중 낙찰가율 100%를 넘긴 것은 6건뿐이다.

8·2 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세종시도 응찰 공세가 끊겼다. 지난 7월 세종시 주거시설 매물 경매에선 건당 응찰자 10명꼴로 경합을 벌였다. 지난달엔 평균 응찰자가 2명으로 급감했다. 낙찰되는 물건도 많지 않다. 세종시 조치원청사 근처에 있는 변암주공아파트 전용 46.7㎡는 감정가 7500만원에 신건으로 나왔다가 지난달 28일 유찰됐다. 요즘 호가가 7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져서다.

일부만 규제 지역에 해당하는 경기도는 큰 타격이 없었다. 이 지역 주거시설 경매 평균 응찰자 수는 7월 7명에서 지난달 6.6명으로 소폭 줄었다. 대책 이후 낙찰가율은 88.5%로 7월(87.5%)보다 떨어졌지만 6월(88.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낙찰 후 집값 내려가면 손해”

경매시장의 응찰 열기가 식은 가장 큰 요인은 대출규제 강화다. 8·2 대책 이전엔 아파트나 주택 경매 시 낙찰가의 최고 80%까지 경락잔금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소규모 종잣돈을 가진 이들이 경매시장에 몰린 이유다. 그러나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가 강화되면서 대출 가능액이 크게 줄었다.

경매 대출알선업체 종사자 박모씨(46)는 “낙찰받은 뒤 최소 3주 이후에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이달부터는 시세의 40%까지만 경락잔금대출이 나온다”며 “나머지는 신용협동조합 대출이나 신용대출로 메워야 하다 보니 지난달부터 응찰에 나서는 사람들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투기과열지구를 중심으로 나타난 집값 하락세도 경매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가격이 계속 오르지만 낮은 호가와 거래 절벽이 겹친 요즘엔 낙찰가보다 집값이 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전 소유자나 임차인을 내보내는 데 드는 명도비용, 미납 관리비 등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면 손실이 더 커진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분간 경매시장도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가격 조사를 꼼꼼히 하고, 낙찰에 급급해 무리한 금액을 쓰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시기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