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삼성전자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에서 일하며 희귀질환을 얻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9일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사업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한 이모씨(33)가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씨 패소로 판결한 1·2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반도체·LCD 노동자 산재 사건 중 업무와 질병 발생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사례다.

이씨는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LCD 패널 화질검사 업무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하루 9∼12시간 전자파를 쐬고 ‘이소프로필알코올’ 등 화학물질에도 노출됐다. 2003년부터는 아토피성 결막염과 팔다리 신경기능 이상이 생겼다. 2007년 퇴사한 이씨는 이듬해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다발성 경화증은 신경섬유가 서서히 파괴돼 근육과 장기가 마비되는 불치병이다.

1·2심은 “이씨가 업무로 인해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거나 자연 경과적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리 3년 만에 이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씨의 발병·악화는 업무와 ‘상당인과관계(타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크다”고 봤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