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도 PB상품 전쟁 > 27일 서울의 편의점 이마트24를 찾은 소비자가 이마트 자체상표(PB) 상품인 ‘노브랜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 편의점도 PB상품 전쟁 > 27일 서울의 편의점 이마트24를 찾은 소비자가 이마트 자체상표(PB) 상품인 ‘노브랜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슈퍼마켓 이토요카도를 운영하는 일본 세븐&아이홀딩스. 이 회사의 성공 비결을 말할 때 꼭 나오는 단어가 ‘단독상품의 힘’이다.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은 2007년 고급 자체상표(PB)인 ‘세븐프리미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세븐일레븐만의 상품이 없으면 앞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편의점과 슈퍼마켓 양쪽에서 모두 팔 수 있는 제품이 콘셉트였다.

그러나 세븐일레븐과 이토요카도 경영진은 반대했다. 세븐일레븐은 “슈퍼마켓인 이토요카도에서 싸게 파는 제품을 편의점에서 취급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토요카도는 “가격 할인을 하지 않는 세븐일레븐과 같은 값에 팔 수 없다”고 반대했다.
"다른 곳엔 없는 상품이 경쟁력"…유통업계, 상품 차별화 불붙었다
◆브랜드 개발 부서 등 잇단 신설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본격적인 ‘단독상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 제조업체로부터 제조업체 상표(NB)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받아 적당한 마진을 붙여서 팔면 성장하던 시절은 끝났다. ‘OO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라 ‘OO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아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유통업체 사장은 “PB 상품 자체는 제조업체가 만드는 것이지만 상품기획, 디자인, 물량, 생산시기 등은 우리가 결정한다”며 “PB나 단독상품이 없다면 온라인으로 빠져나가는 소비자를 매장으로 불러낼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제조업체만 운영하던 브랜드 개발 부서를 유통업체들도 잇따라 신설하고 있다. 수시로 소비자 요구를 파악해 새로운 상품을 신속하게 내놓기 위해서다. 이마트 ‘비밀 연구소’ ‘노브랜드팀’, CJ오쇼핑 ‘브랜드 사업기획팀’ 등이 PB 전담 부서다. 이들 업체는 기존 상품기획자(MD)들의 역할을 브랜드 개발·관리로 확장했다.

국내 대형마트에 첫 PB가 선보인 건 1997년(이마트의 이플러스 우유)이지만 본격적인 PB 품질 경쟁은 2013년 이마트가 식품 브랜드인 피코크를 출시한 이후라는 게 유통업계의 통설이다. 경쟁 마트인 롯데마트는 요리하다와 초이스엘과 같은 PB로, 홈플러스는 싱글즈프라이드와 좋은상품 등의 PB로 이마트에 맞불을 놨다.

백화점들은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로 편집숍을 활용하고 있다. 매일 판매를 확인하면서 인기 있는 브랜드는 취급 상품을 늘리고, 반응이 좋지 않은 브랜드는 새로운 브랜드로 교체하는 식으로 매장을 수시로 바꾼다. 소비자 호응이 높은 브랜드는 백화점에 정식 입점할 수도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와 달리 외형 경쟁이 지속되고 있는 CU, GS25,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은 도시락 라면 소시지 등 간편식 PB의 전쟁터가 됐다. 후발 편의점 이마트24가 이마트의 PB ‘노브랜드’ 제품을 대거 진열한 것도 차별화 전략 중 하나다.

홈쇼핑 업체들은 PB보다 단독상품 발굴에 총력을 쏟고 있다. 출시 2년 만에 누적 주문액이 1700억원을 돌파한 CJ오쇼핑의 여성패션 브랜드 베라왕이 대표적이다. CJ오쇼핑 담당자들은 매 시즌 미국 뉴욕 베라왕 본사를 찾거나 본사 인력을 초청해 신상품 디자인 등을 논의한다.

◆PB 시장도 프리미엄 경쟁

2~3년 전만 해도 PB 상품은 가격이 싼 대신 품질이 떨어져 NB와 경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엔 일부 PB 식품 등의 품질 수준이 NB의 90%까지 올라왔다는 게 식품업계의 분석이다. 출시 첫해 340억원(상품 수 200종)이었던 피코크 매출은 2016년 1900억원(1000종)으로 다섯 배 이상 급증했다. 피코크 새우볶음밥, 피코크 의정부부대찌개 등과 같은 히트상품은 대형 식품업체의 비슷한 제품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주부들 얘기다. 이마트 패션 PB인 데이즈의 작년 매출은 4680억원으로 웬만한 대형 의류업체와 맞먹는다.

유통업계에선 앞으로 PB 시장이 프리미엄 경쟁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부분 지역에 점포가 들어섰고, 매장 판매 품목·가격 경쟁력도 큰 차이가 없다”며 “지금의 PB 품목 확대 경쟁이 마무리되면 다른 업체에 없는 프리미엄급 PB를 얼마나 많이 발굴하고 개발해 내놓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시훈/이수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