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석 맨 뒷자리에 배치
아예 없는 극장도…차별 논란
양병훈 문화부 기자
특정 공연장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 주요 공연장은 대부분 휠체어석을 무대에서 가장 먼 객석 맨 뒷자리에 배치했다. 총 3022석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휠체어석을 객석 1층과 2층 맨 뒤에서 10개씩 운영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총 2527석),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총 1563석) 등도 극장 맨 뒤에 휠체어석을 배치했다. 이들 극장의 휠체어석 위치는 모두 20열 안팎(1층 기준)이다.
다른 공연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디큐브씨어터, 샤롯데씨어터, 정동극장도 휠체어석을 객석 맨 뒤에 배치했다.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은 1층이 기본적으로 스탠딩석이고 경우에 따라 이동식 의자를 놓는다. “이동식 의자를 놓고 공연할 때는 일부 자리를 비워두고 그 자리에 휠체어를 놓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블루스퀘어 관계자는 “극장 정책상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유리 서울예술대 예술경영전공 교수는 “무대공연은 멀리 떨어질수록 잘 보이지 않아 관람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장애인은 공연 감상 기회를 제약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일반 관객은 좌석에 따라 다른 가격을 치르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그런 선택권도 없다”며 “극장이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했다.
아예 휠체어석이 없는 곳도 있다.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이 그렇다. 이곳에서 휠체어에 탄 채 공연을 보려면 객석과 무대 사이의 빈 공간을 이용해야 한다. 충무아트센터 소극장블루에도 휠체어석이 없다. 충무아트센터 관계자는 “극장 내 빈 공간이 있지만 그 자리에 공연 장비를 놓을 때도 있어 항상 휠체어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로 소극장 가운데서도 수현재씨어터, 동양예술극장, TOM 등에는 휠체어석이 없다.
예외적으로 세종문화회관의 세종M씨어터에는 앞에서 4분의 3 정도 위치(총 13열 중 9열)의 양 옆 가장자리에, 세종체임버홀에는 맨 앞줄의 왼쪽 가장자리에 휠체어석이 있다. 그러나 이 자리도 무대에서 너무 멀거나 가까운데다가 한쪽으로 쏠려 있어 관람객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자리는 아니다.
장애인이 일반석 티켓을 산 뒤 휠체어에서 이곳으로 옮겨 앉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극장의 내부 통로는 경사로가 아닌 계단이다. 좌석 옆까지 휠체어로 올 수 없고 극장 입구에서부터 장애인을 부축하거나 업고 들어와야 한다. 극장들은 저마다 “직원들이 부축 등을 통해 장애인의 일반석 이동을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련 교육을 안 받은 사람이 장애인을 부축하거나 업는 건 낙상의 위험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모범 사례가 있기는 하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문화센터는 관객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전체 17열 중 9열)에 휠체어석을 배치했다. 휠체어가 보통 좌석보다 높기 때문에 설계 때 휠체어석의 바닥을 낮췄다. 극장을 설계한 이종수 길록건축사사무소장은 “장애인이 공연을 잘 볼 수 있도록 가장 좋은 자리에 휠체어석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이 예매하지 않으면 공석으로 남겨야 하는 극장 측 부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휠체어석 배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대승적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곧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휠체어석을 관람하기 좋은 위치에 놓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