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영국에 브렉시트 충격 가시화되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관련 토론은 블랙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르지 않는 소재의 원천이다. 내가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발언은 마이클 고브 현 영국 환경장관의 것이다.

지난해 6월 브렉시트 투표 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맡고 있던 고브는 EU를 떠나면 영국 경제가 상당히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경제학자 등의 일치된 전망을 부정했다. 그는 “이 나라에는 전문가가 충분히 있어 왔는데, 이들은 뭐가 최선인지 알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계속 틀리는 사람들”이라고 성급히 말했다.

투표 직후의 (경제 지표) 증거들은 놀랍게도 고브가 맞고 전문가들이 틀린 것처럼 보였다. 영국은 투표 후 즉각 침체에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장이 둔화되지도 않았다. 영국 중앙은행(BOE)이 수요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신속히 내린 점, 파운드화가 대폭 평가절하돼 영국 수출업체의 경쟁력이 통상환경 변화로 인한 문제를 상쇄할 만큼 좋아진 점 등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영국이 EU의 무거운 규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사업하기 더 좋은 환경과 낮은 법인세를 제공해 해외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경제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학자들은 불확실성을 직접 측정할 수 없고 이런 저런 대용 지표를 활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효과가 제대로 측정되기 어렵다는 점을 꼬집었다.

하지만 이후 몇 분기가 더 지나면서 이들의 (낙관적인) 전망은 힘을 잃고 있다. 영국 소비심리는 위축되고 있다. 2분기 소비지출은 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규 차량판매 건수는 4분기 연속 하락세다. BOE는 향후 수년간 기업 투자가 20%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소비심리 위축은 브렉시트의 결과라기보다는 지난 6월 영국 총선 결과 여당이 과반을 잃은 것이나 EU와의 브렉시트 협상 전략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듯이 보인다는 점 등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총선 결과 보수당과 노동당이 모두 승리를 가져가지 못한 것은 양당의 브렉시트 문제에 대한 분열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브렉시트 투표 전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테리사 메이 현 영국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의 거주자(총리)로서 브렉시트에 대응하고 있고,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공식적으로 브렉시트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그 결과에 묘한 만족감을 느끼는 듯이 보인다.

정부가 일관성 있는 협상 전략을 구사한다면 브렉시트로 인한 손실 규모를 줄일 수 있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메이 총리의 목표인 이민의 제한과 EU 단일시장에 대한 완전한 접근권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놀랄 만한 것이 하나 있다면, 브렉시트 투표의 결과가 현실화하는 데 예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는 점뿐이다. EU와의 이혼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고, 협상이 2년 내에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소비자들은 파운드화 평가절하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리라고 생각하고 작년 하반기에 지출을 서둘렀다. 부채가 늘어난 만큼, 이들은 더 이상 상당한 지출을 지속할 만한 처지가 아니다. 게다가 파운드화 평가절하로 물가가 적잖이 오를 징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BOE가 빠르든 늦든 금리를 올려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던 고(故) 루디 돈부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1990년대 멕시코 페소화 위기에 관해 “위기가 찾아오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퍼진다”고 했다. 브렉시트로 인한 손실에도 같은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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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