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회계법인이 분식회계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감사의견(상반기 보고서)을 ‘적정’으로 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회계적 판단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분식회계 사태의 불똥이 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강수를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KAI의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14일 “회계기준 규정을 위반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상반기 재무제표 감사의견으로 ‘적정’을 제시했다. 삼일회계법인은 검찰 수사 여부와 관계없이 재무제표에 회계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부터 KAI 외부 감사를 맡고 있는 이 회계법인은 이번 반기보고서까지 재무제표에 모두 ‘적정’ 의견을 냈다.

분식회계 혐의로 금융감독원 감리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KAI는 삼일회계법인의 ‘적정’ 의견으로 한시름을 덜게 됐지만 당국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자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자료 부족을 이유로 ‘한정’ 의견을 낸 전례에 비춰 이번에도 ‘한정’ 의견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감사인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삼일회계법인이 강수로 대응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의 불똥이 회계법인으로 튀어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이 처벌받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회계법인이 관리 감독을 성실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분식회계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회계 조작을 한 당사자가 지는 게 상식”이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삼일회계법인의 ‘적정’ 의견 제시를 두고 수주산업 회계처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수년간 비용과 수익을 추정에 의존하는 수주산업 특성 때문에 의도적인 분식회계가 아니어도 추정치와 실제 금액이 달라지는 일이 있을 수 있어서다. KAI는 전날 상반기 보고서를 공시하면서 2013~2016년 누적 매출을 350억원 과대 계상하고 영업이익은 734억원 과소 계상했다며 4년치 사업보고서를 정정했다. KAI가 국제 회계기준에 맞춰 매출과 영업이익 인식 방법을 바꾸면서 매출은 줄고 이익은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과 달리 적자를 숨기려 한 게 아니라 회계기준 변경으로 오히려 영업이익이 늘어난 만큼 두 기업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