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서둘렀다 역효과 날 수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가 민감한 시기에 강세를 띠고 있는 유로화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올 들어 13%, 지난 석 달 사이에만 5% 이상 상승했다. 작년 말까지 유로화와 달러화 가치가 1 대 1(유로·달러 패리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가 회복세인 데다 달러 약세로 인한 상대효과, 드라기 총재가 지난 6월27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긴축 기조를 예고하는 연설을 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유로화 가치가 오를수록 통화 긴축정책을 쓰는 것이 까다로워진다. 일단 물가가 올라야 긴축의 명분이 서는데 수입품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목표치(연 2% 물가상승)를 달성하기가 어렵다. 유로존 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도 떨어진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긴축 기조로 돌아가야 한다는 명분에서 밀리면 섣부른 긴축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ECB 내 비둘기파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없다. ECB는 여러 경로로 긴축을 서두르는 게 아니라며 신트라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지만 시장은 쉽게 설득되지 않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상황과 정반대다. 옐런 의장도 긴축 기조로 돌아서겠다고 예고했다. 달러화 가치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긴축정책을 취하기에 상황이 나쁘지 않다. 유로화가 달러 약세에 따른 상대적인 강세를 띠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드라기가 옐런의 고충을 대신 떠안은 형국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은 ECB가 한층 조심스럽게 긴축 정책을 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초 시장에선 이르면 다음달 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현재 월 600억유로 수준인 QE 규모를 줄이는 내용의 내년 계획안이 공개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근에는 10월26일 공개될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유로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과 별개로 ECB의 초저금리 통화정책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리서치회사 TS롬바르드의 켄 워렛 이코노미스트는 “QE가 아니더라도 통화정책은 상당 기간 ‘극단적으로 완화적인’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