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산골 딸기농부로 변신한 LG.삼성전자 출신 40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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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을 달고 3년쯤 지났을 때였어요. 그때 쯤이면 방향을 결정해야 하잖아요.”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샐러리맨이라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대충 안다. LG전자를 다니다 경북 상주로 귀농해 딸기 농사를 짓는 박홍희 우공의딸기정원 대표(46)도 이 얘기부터 꺼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은 거의 포기하고 임원 승진을 위해 더 열심히 뛰거나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 준비해야하는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한창 커가는 아이들 얼굴을 지켜보면서 살수 있는 길을 택했다. “내 인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길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농업에 기회가 있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는 올해 귀농 5년차다. 박 대표와 아내 곽연미 씨(45)는 상주시 청리면에 9000㎡(2700여 평) 땅을 빌렸다. 이곳에 7500㎡(2200여 평) 넓이의 온실을 세워 딸기를 키우고 있다. 농장 한편엔 방문객들을 위한 400㎡ 넓이의 체험시설도 마련했다. ‘우공의 딸기정원’이라는 법인명은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는 어리석은 사람이 결국 산을 옮긴다’라는 뜻의 고사성어인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따왔다.
1년에 수확하는 딸기는 22t 가량. 박 대표 부부는 딸기를 택배로 판매하거나 딸기잼으로 가공해 판다. 올 상반기 5000여 명이 방문한 수확 체험 프로그램도 수입원 중 하나다.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작년에 벌어들인 소득은 약 8000만원이었다. 아내는 삼성전자를 다녔다. 부부가 LG전자와 삼성전자를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큰 돈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표는 넉넉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부장과 차장으로 안정된 코스를 밟아가던 이들이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농촌으로 떠난 건 왜일까. “도대체 왜 귀농을 했어요?” 이 질문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에 대해 답할 때마다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듯 바라본다고 했다. 일부에선 “명예퇴직을 당한 뒤 어쩔 수 없이 시골로 간 것 아니냐”며 안쓰럽게 바라보기도 한단다.
이들 부부가 귀농을 결정하게 된 건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이었다. 박 대표는 진짜 나의 인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금만 더하면 직장인의 꿈인 임원 자리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보다 더 풍족한 생활에 욕심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희생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한창 부모의 관심이 필요한 두 딸과 함께 보낼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가장 걸렸어요. 이대로 계속 가다간 가족이 와해될 수도 있겠다라는 걱정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거든요. 고민하다가 아내한테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워킹맘이던 곽 씨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남편보다 더 컸다고 했다. 결국 부부는 별다른 이견없이 귀농을 결정했다. 귀농지로는 박 대표의 어머니가 홀로 내려가 살고 있는 구미 선산읍과 가까운 상주를 택했다. 박 대표의 고향인 대구와도 그리 멀지 않았고 어머니를 보러 갈 때마다 자주 오가던 곳이라 낯설지도 않았다.
“편하진 않아요. 일도 더 많아요. 귀농하고 4년간은 단 하루도 온전한 휴일이 없었어요. 추석하고 설날에도 농장에서 일했어요. 추석은 옮겨 심은 딸기 모종이 한창 자랄 때고 설날 즈음엔 딸기가 막 출하되는 대목이니까요. 올해부터 처음 2주에 하루씩은 쉬기로 했어요. 목표는 그랬는데 일들이 계속 있으니까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네요.”
박 대표 부부의 귀농 결심 계기와 배치된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요,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은 훨씬 늘었어요. 휴일은 없지만 저녁이 생겼어요. 아침을 가족들과 같이 먹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수도 있어요. 시간 되면 데리러도 가죠. 저녁은 거의 항상 같이 먹고요.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회사 다니면서 이걸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겁니다.”
◆귀농 노트1;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박 대표 부부의 귀농 준비과정은 치밀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떠올렸다. 부부는 KAIST (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경영학에서 배운대로 귀농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잡은 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짜 실천했다.
가족이 터전을 옮기기 전 주말마다 상주를 오가며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각종 귀농교육을 들었다. 진짜로 내려가 살 수 있을지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2012년 주말을 이용해 부부가 함께 상주공동체귀농학교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박 대표가 1년간 육아휴직을 낸 뒤 상주시 청리면에 내려가 살면서 마을 딸기작목반 반장 밑에서 딸기 농사의 기본을 배웠다. 진짜 귀농을 원하고 가능한지 한 명이 먼저 내려가 살아본 것이다.
그는 “농업 인턴이라고 불렸지만 사실 무보수로 일하는 머슴살이 기간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농사일을 배우면서 경기농업기술원에서 제공하는 귀농적응반 교육도 마쳤다. 같은 시기 아내도 상주시 귀농건축학교 과정을 수료했다.
작목반장 밑에서 일하며 딸기 모종 키우기, 옮겨 심기, 재배, 수확, 판매 등 딸기 농사의 1년 과정을 거친 박 대표는 자신감이 생겼다. 2014년 봄 LG전자에 사표를 냈다. 딸기농장을 시작했다. 10년간 임차하는 조건으로 땅을 빌려 온실을 지었다. 1년 뒤 아내도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두 딸과 함께 상주로 합류했다.
“아무리 교육을 잘 듣고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귀농이란 게 쉽지 않잖아요. 혹시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선 한 사람만 먼저 내려가고 다른 사람은 남아서 회사를 다니자고 얘기했죠. 성공할 수 있겠단 확신이 들면 아내도 내려오는 걸로 했어요.” ◆귀농 노트2 : 3년만에 수입을 4배 올린 비결
박 대표가 자신의 농장을 꾸린 2014년 벌어들인 수입은 2000만원 남짓이었다. 대기업 부장 시절 연봉과 비교하니 아찔했다. 그 소득이 3년만에 8000만원으로 4배로 뛰었다. 딸기 농사를 배우는 멘티 두 명과 포장작업을 돕는 임시직 인력들을 인건비를 제한 소득이다. 3년 사이 재배면적은 1000여평에서 1600평으로 60%가량 넓어졌다. 재배 면적은 60% 늘었는데 수익은 4배 가까이 많아진 것이다.
비결이 뭘까. 첫째, 딸기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 덕분이다. 박 대표는 귀농 후 농사를 짓는 틈틈이 다양한 농업교육을 받으며 딸기 재배법을 배웠다. 2014년엔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수출용 딸기 수경재배 과정’을 1년간 다녔고 2016년엔 경북농업마이스터대학을 다니며 딸기 재배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온실 안에서 딸기를 수경 재배를 통해 기르고 있다. 물과 양분의 양, 재배 온도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좀 더 높은 품질의 딸기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딸기에 비대제(과일 열매를 크게 만드는 영양제)와 호르몬제를 주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
소비자들과 직접 거래하는 온라인 직거래망을 만든 것도 수익을 끌어올린 비결이다. 딸기는 과일이 쉽게 짓무르기 때문에 택배로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 대표 부부는 먼 거리까지 운반하더라도 딸기가 상처입지 않도록 하는 포장 박스를 자체 개발했다. 딸기를 한 알 한 알을 감싸주는 스티로폼 박스다.
박 대표는 인터넷 웹페이지를 개설하고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해 딸기를 팔기 시작했다. 딸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집으로 배송해준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직거래로 판매하면 900g~1㎏들이 한 상자에 2만 원에 팔 수 있다. “가격이 떨어져도 한 상자에 1만5000원 이상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판장을 통해 경매로 판매할 때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박 대표는 농장을 차린 이듬해인 2015년 봄부터 수확한 딸기로 딸기잼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매년 3~4t 가량의 딸기를 잼으로 만들어 4500병 내외의 잼을 판다. 냉동 딸기가 아닌 갓 수확한 생딸기로만 잼을 만들고 있다. 600g들이 잼 한 병의 가격은 딸기 함량에 따라 각각 1만1000원(딸기 650g 함유), 1만4300원(딸기 850g)이다. 박 대표 부부가 만든 생깔기잼은 매년 시장에서 완판된다.
“생딸기로만 잼을 만들려면 가공에 필요한 수량을 이틀 안에 수확해야 해요. 충분히 생과일로 팔 수 있는 크고 굵은 딸기들도 잼으로 만들죠. 원래는 1년 농사 끝물에 작고 농익어서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는 딸기로 잼을 만드는데 제가 생과일로 팔 수 있는 딸기로 잼을 만든다니까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농사 경력이 안돼서 무모한 짓을 벌인다는 시선도 있었고요. 그래도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가격이 비싸더라도 좋은 잼을 먹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농장 안에 별도의 체험 온실을 만들어 수확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도 수익에 도움이 됐다.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한 첫 1000여 명에 머물던 방문객은 지난해 2500여 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벌써 5000명을 넘어섰다.
◆귀농 5년 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귀농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귀농 준비 단계에서 농지와 주택을 구입하고 농사 기술을 배우는 것을 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농촌에 내려가면 이보다 더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래부터 농촌에서 살아온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사 온 지 십 년이 넘어도 귀농인은 여전히 원래 살던 주민들에겐 외지인으로 보이는 거 같아요. 주민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선 자기가 먼저 나서서 이런저런 마을 모임 자리에도 참석하고 모임에서 총무 같은 자리도 맡아서 솔선수범하는 게 중요해요.”
그는 올해 초 지인들과 함께 농업회사법인 굿파머스그룹을 설립했다. 딸기 농장과는 별도로 농촌에서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다.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과 인맥을 살려 농촌에서 스마트팜 단지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할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저는 제 자신을 딸기 농사짓는 농부이자, 우공의 딸기정원의 최고경영자, 농업회사법인의 창업자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딸기농장을 키우는 게 우선이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농업 관련 벤처사업가나 농업 컨설턴트가 돼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FARM 홍선표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053428076
그는 올해 귀농 5년차다. 박 대표와 아내 곽연미 씨(45)는 상주시 청리면에 9000㎡(2700여 평) 땅을 빌렸다. 이곳에 7500㎡(2200여 평) 넓이의 온실을 세워 딸기를 키우고 있다. 농장 한편엔 방문객들을 위한 400㎡ 넓이의 체험시설도 마련했다. ‘우공의 딸기정원’이라는 법인명은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는 어리석은 사람이 결국 산을 옮긴다’라는 뜻의 고사성어인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따왔다.
1년에 수확하는 딸기는 22t 가량. 박 대표 부부는 딸기를 택배로 판매하거나 딸기잼으로 가공해 판다. 올 상반기 5000여 명이 방문한 수확 체험 프로그램도 수입원 중 하나다.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작년에 벌어들인 소득은 약 8000만원이었다. 아내는 삼성전자를 다녔다. 부부가 LG전자와 삼성전자를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큰 돈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표는 넉넉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부장과 차장으로 안정된 코스를 밟아가던 이들이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농촌으로 떠난 건 왜일까. “도대체 왜 귀농을 했어요?” 이 질문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에 대해 답할 때마다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듯 바라본다고 했다. 일부에선 “명예퇴직을 당한 뒤 어쩔 수 없이 시골로 간 것 아니냐”며 안쓰럽게 바라보기도 한단다.
이들 부부가 귀농을 결정하게 된 건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이었다. 박 대표는 진짜 나의 인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금만 더하면 직장인의 꿈인 임원 자리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보다 더 풍족한 생활에 욕심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희생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한창 부모의 관심이 필요한 두 딸과 함께 보낼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가장 걸렸어요. 이대로 계속 가다간 가족이 와해될 수도 있겠다라는 걱정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거든요. 고민하다가 아내한테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워킹맘이던 곽 씨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남편보다 더 컸다고 했다. 결국 부부는 별다른 이견없이 귀농을 결정했다. 귀농지로는 박 대표의 어머니가 홀로 내려가 살고 있는 구미 선산읍과 가까운 상주를 택했다. 박 대표의 고향인 대구와도 그리 멀지 않았고 어머니를 보러 갈 때마다 자주 오가던 곳이라 낯설지도 않았다.
“편하진 않아요. 일도 더 많아요. 귀농하고 4년간은 단 하루도 온전한 휴일이 없었어요. 추석하고 설날에도 농장에서 일했어요. 추석은 옮겨 심은 딸기 모종이 한창 자랄 때고 설날 즈음엔 딸기가 막 출하되는 대목이니까요. 올해부터 처음 2주에 하루씩은 쉬기로 했어요. 목표는 그랬는데 일들이 계속 있으니까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네요.”
박 대표 부부의 귀농 결심 계기와 배치된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요,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은 훨씬 늘었어요. 휴일은 없지만 저녁이 생겼어요. 아침을 가족들과 같이 먹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수도 있어요. 시간 되면 데리러도 가죠. 저녁은 거의 항상 같이 먹고요.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회사 다니면서 이걸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겁니다.”
◆귀농 노트1;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박 대표 부부의 귀농 준비과정은 치밀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떠올렸다. 부부는 KAIST (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경영학에서 배운대로 귀농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잡은 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짜 실천했다.
가족이 터전을 옮기기 전 주말마다 상주를 오가며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각종 귀농교육을 들었다. 진짜로 내려가 살 수 있을지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2012년 주말을 이용해 부부가 함께 상주공동체귀농학교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박 대표가 1년간 육아휴직을 낸 뒤 상주시 청리면에 내려가 살면서 마을 딸기작목반 반장 밑에서 딸기 농사의 기본을 배웠다. 진짜 귀농을 원하고 가능한지 한 명이 먼저 내려가 살아본 것이다.
그는 “농업 인턴이라고 불렸지만 사실 무보수로 일하는 머슴살이 기간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농사일을 배우면서 경기농업기술원에서 제공하는 귀농적응반 교육도 마쳤다. 같은 시기 아내도 상주시 귀농건축학교 과정을 수료했다.
작목반장 밑에서 일하며 딸기 모종 키우기, 옮겨 심기, 재배, 수확, 판매 등 딸기 농사의 1년 과정을 거친 박 대표는 자신감이 생겼다. 2014년 봄 LG전자에 사표를 냈다. 딸기농장을 시작했다. 10년간 임차하는 조건으로 땅을 빌려 온실을 지었다. 1년 뒤 아내도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두 딸과 함께 상주로 합류했다.
“아무리 교육을 잘 듣고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귀농이란 게 쉽지 않잖아요. 혹시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선 한 사람만 먼저 내려가고 다른 사람은 남아서 회사를 다니자고 얘기했죠. 성공할 수 있겠단 확신이 들면 아내도 내려오는 걸로 했어요.” ◆귀농 노트2 : 3년만에 수입을 4배 올린 비결
박 대표가 자신의 농장을 꾸린 2014년 벌어들인 수입은 2000만원 남짓이었다. 대기업 부장 시절 연봉과 비교하니 아찔했다. 그 소득이 3년만에 8000만원으로 4배로 뛰었다. 딸기 농사를 배우는 멘티 두 명과 포장작업을 돕는 임시직 인력들을 인건비를 제한 소득이다. 3년 사이 재배면적은 1000여평에서 1600평으로 60%가량 넓어졌다. 재배 면적은 60% 늘었는데 수익은 4배 가까이 많아진 것이다.
비결이 뭘까. 첫째, 딸기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 덕분이다. 박 대표는 귀농 후 농사를 짓는 틈틈이 다양한 농업교육을 받으며 딸기 재배법을 배웠다. 2014년엔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수출용 딸기 수경재배 과정’을 1년간 다녔고 2016년엔 경북농업마이스터대학을 다니며 딸기 재배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온실 안에서 딸기를 수경 재배를 통해 기르고 있다. 물과 양분의 양, 재배 온도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좀 더 높은 품질의 딸기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딸기에 비대제(과일 열매를 크게 만드는 영양제)와 호르몬제를 주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
소비자들과 직접 거래하는 온라인 직거래망을 만든 것도 수익을 끌어올린 비결이다. 딸기는 과일이 쉽게 짓무르기 때문에 택배로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 대표 부부는 먼 거리까지 운반하더라도 딸기가 상처입지 않도록 하는 포장 박스를 자체 개발했다. 딸기를 한 알 한 알을 감싸주는 스티로폼 박스다.
박 대표는 인터넷 웹페이지를 개설하고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해 딸기를 팔기 시작했다. 딸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집으로 배송해준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직거래로 판매하면 900g~1㎏들이 한 상자에 2만 원에 팔 수 있다. “가격이 떨어져도 한 상자에 1만5000원 이상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판장을 통해 경매로 판매할 때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박 대표는 농장을 차린 이듬해인 2015년 봄부터 수확한 딸기로 딸기잼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매년 3~4t 가량의 딸기를 잼으로 만들어 4500병 내외의 잼을 판다. 냉동 딸기가 아닌 갓 수확한 생딸기로만 잼을 만들고 있다. 600g들이 잼 한 병의 가격은 딸기 함량에 따라 각각 1만1000원(딸기 650g 함유), 1만4300원(딸기 850g)이다. 박 대표 부부가 만든 생깔기잼은 매년 시장에서 완판된다.
“생딸기로만 잼을 만들려면 가공에 필요한 수량을 이틀 안에 수확해야 해요. 충분히 생과일로 팔 수 있는 크고 굵은 딸기들도 잼으로 만들죠. 원래는 1년 농사 끝물에 작고 농익어서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는 딸기로 잼을 만드는데 제가 생과일로 팔 수 있는 딸기로 잼을 만든다니까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농사 경력이 안돼서 무모한 짓을 벌인다는 시선도 있었고요. 그래도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가격이 비싸더라도 좋은 잼을 먹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농장 안에 별도의 체험 온실을 만들어 수확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도 수익에 도움이 됐다.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한 첫 1000여 명에 머물던 방문객은 지난해 2500여 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벌써 5000명을 넘어섰다.
◆귀농 5년 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귀농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귀농 준비 단계에서 농지와 주택을 구입하고 농사 기술을 배우는 것을 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농촌에 내려가면 이보다 더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래부터 농촌에서 살아온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사 온 지 십 년이 넘어도 귀농인은 여전히 원래 살던 주민들에겐 외지인으로 보이는 거 같아요. 주민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선 자기가 먼저 나서서 이런저런 마을 모임 자리에도 참석하고 모임에서 총무 같은 자리도 맡아서 솔선수범하는 게 중요해요.”
그는 올해 초 지인들과 함께 농업회사법인 굿파머스그룹을 설립했다. 딸기 농장과는 별도로 농촌에서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다.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과 인맥을 살려 농촌에서 스마트팜 단지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할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저는 제 자신을 딸기 농사짓는 농부이자, 우공의 딸기정원의 최고경영자, 농업회사법인의 창업자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딸기농장을 키우는 게 우선이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농업 관련 벤처사업가나 농업 컨설턴트가 돼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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