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명동 상점들이 대규모 세일에 나섰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명동 상점들이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8일 서울 명동 상점들이 대규모 세일에 나섰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명동 상점들이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올초 빠른 회복세를 나타내던 경제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2분기를 지나면서 경기 개선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해 올해 3% 성장 목표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성장세를 이끌던 수출과 생산 투자가 주춤해진 탓이다.

겉보기엔 여전히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반도체 등 특정 품목에 쏠려 있는 착시 현상인 데다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조치로 국내 성장의 큰 축이던 건설 투자마저 위축될 조짐이다. 민간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지극히 낮은 기형적이고 취약한 성장 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높아지고 있다.

단가 회복에 기댄 수출 성장세가 꺾이고 건설 투자도 성장 동력을 잃으면 경제 상황이 다시 악화하는 ‘더블딥’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주춤해진 수출, 회복 더딘 내수

6분기 만에 1%대로 올라선 1분기 경제성장률(1.1%)은 2분기(0.6%)에 반 토막이 났다. 기저효과 탓만 하기엔 생산, 수출, 소비, 투자 등 주요 지표의 둔화세가 심상치 않다.

수출은 올 들어 고공 행진하며 경기 회복세를 주도했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은 19.5%로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하지만 반도체 등 특정 품목을 빼면 상황이 다르다. 반도체(57.8%)와 선박(208.2%)을 뺀 7월 수출 증가율은 2.8%에 불과했다. “반도체는 호황 사이클이 끝나면 언제든지 수출 둔화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우려다.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민간 소비도 여전히 회복이 더디다. 6월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1.0%로 전월(1.5%)보다 증가 폭이 둔화됐다.
수출·생산 주춤, 건설투자도 둔화 조짐… 올 3% 성장 '안갯속'
◆생산 둔화하고 가동률은 최저

수출과 소비 증가가 동시에 주춤해지면서 6월 전산업생산은 전월(2.6%)보다 낮은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광공업생산은 자동차(-2.5%), 기타운송장비(-13.2%) 부진과 함께 반도체(-12.4%) 생산이 큰 폭으로 줄어 0.3% 감소세(전년 동기 대비)로 돌아섰다. 제조업 가동률의 저하 추세를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2분기 제조업 가동률은 71.6%다. 2009년 1분기(66.5%) 이후 가장 낮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의 쏠림 현상을 감안하면 다른 기업의 공장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6월 고용은 전년 동월 대비 증가 폭이 37만5000명에서 30만1000명으로 감소했다. 실업자는 106만9000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6만5000명 증가했다. 뛰고 있는 물가는 내수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 폭은 2.2%로 전년 같은 기간(1.9%)에 비해 커졌다. 특히 생활물가지수가 3.1% 급등하면서 5년6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부동산·증시·가계부채도 ‘발목’

전문가들은 ‘8·2 부동산 대책’ 여파로 인한 부동산시장 위축 가능성과 증시 조정 분위기도 회복세를 더욱 둔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강도 높은 규제책을 들고 나오면서 부동산 거래는 물론 건설 투자도 냉각될 조짐이다.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차익 실현 등의 일시적 원인이 작용했지만 정부의 각종 규제 정책과 하반기 생산·수출 둔화에 대한 우려가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발표한 올해 3% 성장률 전망치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3% 성장을 위해선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0.8%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해야 한다.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집행이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키우고 기업이 본연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성장 둔화가 고착화할 수밖에 없다”며 “재정 적자만 키우면 오히려 경제 구조를 더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김일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