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조던 스피스가 13번 홀(파4)에서 티샷부터 홀아웃까지 사용한 대략적인 시간이다. 맷 쿠처가 쓴 시간까지 합하면 29분이 걸렸지만 스피스는 이 29분으로 대반전의 불씨를 살려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드라이버 티샷부터 문제가 생겼다. 다운스윙에서 클럽 헤드가 뒤늦게 따라오는 바람에 클럽 헤드가 열려 공이 오른쪽으로 심각하게 밀린 것. 아마추어에게 흔한 슬라이스다. 오른쪽으로 크게 휘며 날아간 공은 사람 키만한 링크스 코스 특유의 풀숲으로 빠지고 말았다. 공을 칠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스피스는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조던 스피스의 ‘스마트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한 선수는 1벌타를 받은 뒤 세 가지 옵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가 원래 쳤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치는 것이며, 두 번째가 공이 있던 곳에서 홀컵과 가깝지 않은 곳으로 두 클럽 이내 드롭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홀컵과 공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의 직후방에 공을 드롭해 경기를 재개하는 것(골프 규칙 제 28조)이다.

스피스는 세 번째 옵션을 ‘지능적’으로 택했다. 공이 떨어진 장소에선 앞의 두 가지가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직후방으로 연결한 곳에는 선수들의 클럽을 수리해주는 클럽용품사의 대형버스(투어밴)가 줄지어 서 있다는 점을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버스들 사이에 드롭할 의사가 있다고 경기위원에게 ‘어필’하자 경기위원은 무벌타로 평평한 드라이빙 레인지(연습장) 주변 공터에 드롭할 수 있다고 허락해줬다. 투어밴을 ‘일시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물(TIO : temporary immovable obstructions)’로 인정해준 것이다. 이 시나리오를 스피스가 미리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스피스는 여기서 그가 좋아하는 2번 드라이빙 아이언을 빼들고 샷을 날렸다. 이 샷은 그린 옆으로 떨어졌고 ‘천금 같은’ 보기를 적어냈다. 트리플 또는 쿼드러플 보기를 범할 수도 있는 벼랑 끝 상황을 최선의 전략으로 탈출했다. 그는 지난해 마스터스 대회 12번 홀(파3)에서 티샷 실수로 쿼드러플 보기를 적어내 대니 윌렛(영국)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이때 악몽이 데자뷔처럼 징크스로 변할 수 있었던 상황을 냉철한 판단력으로 극복해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