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예정에 없던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가 추진되면서 ‘정치논리로 세제가 누더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과세표준 기준 5억원 초과 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0%에서 42%로 올리고 법인소득 2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대해 25%의 최고세율을 신설하는 증세안을 제시했다. 이어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 증세’를 공식화하면서 부유층이나 대기업 대상 증세가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세수 효과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정교하게 따지지 않은 채 각종 정치 논리로 세제가 바뀌면서 조세 형평성이 훼손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세제…대기업·고소득자만 짓누른다
◆법인세, ‘대기업 차별 세제’로 전락

현재 국내 법인세 체계는 3단계다. 과표 기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다. 추 대표는 여기에 2000억원 초과 대기업은 25%의 세율을 신설하는 걸 제안했다.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되면 3단계인 법인세 체계가 4단계로 늘어난다.

이는 세계적 흐름과 역행한다.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기준으로 보면 호주 스웨덴 등 24개국은 단일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기업 이득에 상관없이 하나의 세율만 적용한다는 의미다. 프랑스, 일본 등 7개국은 2단계다. 미국은 8개 단계를 두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법 개정을 통해 15% 단일세율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4단계 이상 법인세 체계를 갖는 나라는 한국과 벨기에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법인세제가 미국이나 벨기에보다 대기업에 더 차별적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미국과 벨기에는 작은 영세기업에만 낮은 세율을 적용할 뿐 원화 기준으로 과표 5억원(미국 7만5000달러, 벨기에 32만2500유로)이 넘으면 모두 최고 수준의 세율을 적용받는다”며 “일부 대기업에만 높은 법인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뒤 이번에 다시 올리면서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추세와 역행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표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적용세율도 높아지는 세제를 회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분할에 나서며 축소 경영을 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6년 새 6단계로 높아진 소득세율

소득세제도 지난 수년간 법인세 못지않게 복잡해졌다. 국내 소득세제는 1996년 4단계로 개편된 이후 2011년까지 큰 틀을 유지했지만 세율은 몇 차례 걸쳐 바뀌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최고세율이 40%에서 36%로 떨어졌고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다시 35%로 인하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말 세법 개정으로 이듬해부터 세율이 5단계로 늘어나면서 3억원 초과 소득에 대해 38%의 최고세율이 신설됐다.

박근혜 정부 때도 두 차례에 걸쳐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증세가 이어졌다. 2014년 38% 최고세율 적용 구간이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조정됐고 올해부터 5억원 초과분에 40%의 최고세율이 신설됐다. 이번에 추 대표의 제안대로 증세가 이뤄지면 내년부터 5억원 초과에 대해 42%의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2011년 이후 6년 새 세율 구간이 4단계에서 6단계로 늘어나고 최고세율은 35%에서 42%로 7%포인트 높아진다.

◆훼손되는 조세형평성

문제는 특정 계층만 대상으로 한 증세가 되풀이되면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조세 원칙은 갈수록 훼손된다는 점이다. 국세통계에 따르면 2016년 법인세를 신고한 64만여 개 기업 중 47.2%는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지만 0.04%에 불과한 245개 대기업(과표 1000억원 이상)은 전체 법인세의 52%를 냈다.

2015년 근로소득세를 신고한 1732만 명 중 46.5%도 세금을 안 낸 면세자다. 반면 0.2%도 안되는 과표 3억원 이상 근로소득자는 전체 근로소득세의 12.8%를 냈다. 이번에 대기업과 고소득자만 또 증세를 하면 이들의 세금부담 편중은 더 심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번 증세가 집권 여당과 청와대 주도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란 지적이다. 당초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설정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김진표 위원장과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의 김동연 부총리 겸 장관 등은 올해 법인·소득세율 인상을 통한 증세는 없다고 밝혔다.

한 세제 전문가는 “정치논리로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상황은 세제의 안정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