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도서관인 ‘노동자의 책’ 홈페이지.
전자도서관인 ‘노동자의 책’ 홈페이지.
‘이적 표현물이 수두룩한 전자도서관 운영은 국가보안법 위반일까.’

전자도서관을 운영하며 이적표현물을 판매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진영 노동자의책 대표에게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심규홍)는 2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2009년부터 전자도서관인 ‘노동자의책’을 운영하며 수년간 인터넷을 통해 이적표현물을 판매한 혐의 등을 받았다. 홈페이지에서 1970~1980년대 사회과학, 노동 관련 서적 등을 소개하고 PDF 파일 등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문건과 서적을 합해 3000여 권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이 대표가 ‘강철서신’ ‘미제침략사’ 등 이적표현물 70권을 반포(널리 배포)하고 22권을 판매한 데다 37권을 소지했다”며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 이어 “폭력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 전복이 이 대표의 진정한 목적”이라고도 했다. 반면 이 대표의 변호인은 “기소 근거가 된 책들은 전체 소장도서의 1.6%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하는 서적을 일부 소지했고 회원이 1만2000명이 넘는 (노동자의책) 사이트에 해당 PDF 파일을 업로드하는 등 이적표현물 반포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이는 전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이적표현물을 반포·소지하는 데 있어 반국가 단체를 찬양·동조·선동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설령 그런 목적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미칠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너무 급진적인 판결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부 무죄면 몰라도 전부 무죄 판결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검찰 공소장에 있는 이 대표의 책 중 상당수가 이미 대법원에서 이적표현물로 결론났는데 다소 편향된 판결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법원은 올 들어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대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활동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9일에도 제주지방법원이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받은 강모씨(77)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대표는 판결 직후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악법들은 어겨서 깨뜨리자”며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에 앞장서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 대표 변호인인 김종보 변호사도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이 일어나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