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인 오스틴 200주기
영국 BBC의 ‘지난 1000년간 최고 문학가’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영국 여성작가 제인 오스틴. 그녀는 1775년 영국 남부 햄프셔주 스티븐턴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받았다. 15세부터 단편소설을 썼다. 편지 쓰는 것도 즐겨 평생 3000여 통을 보냈다.

첫사랑은 스물한 살 때 만난 아일랜드 청년 톰. 둘은 거의 결혼 직전까지 갔다. 그녀는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사답고 잘생기고 유쾌한 청년’이라며 ‘내일이면 청혼받을 것 같다’고 썼다. 하지만 톰 가족의 반대로 결혼은 무산됐다. 이 상처를 안고 쓴 소설이 《첫인상》이다. 모든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이 작품은 17년 후인 1813년에야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란 제목으로 빛을 봤다.

이 작품의 인세는 고작 110파운드였다. 저작권까지 넘겨야 했기 때문에 같은 해 2쇄를 찍었지만 더 이상 돈은 못 받았다. 2년 앞서 발표한 소설 《분별력과 감수성(Sense and Sensibility)》으로는 140파운드를 받았지만 제작비를 지급해야 했다. 그렇게 평생 받은 인세는 710파운드에 불과했다. 《오만과 편견》 속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아버지의 연수입이 2000파운드, 언니 제인의 남자 빙리의 연수입은 4000파운드인 걸 보면 초라한 액수다. 엘리자베스의 남자 다아시는 연간 1만파운드를 벌었다고 나온다. 작품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는 여성이 경제적 이유로 결혼하던 사회였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든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한때 옥스퍼드대 출신 부잣집 남자에게 청혼을 받아 승낙한 적도 있지만 고심 끝에 하루 뒤 번복했다. 소설의 해피엔딩과는 정반대였다.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편견’ 때문에 구애를 거부하다 첫인상보다 속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고친 뒤 결혼하는 엘리자베스는 그녀가 바라는 꿈이었는지 모른다.

올해는 그녀가 42세로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되는 해. 영국항공이 제인 오스틴 소설 속 명소 4곳을 선정하고 여행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나섰다. 그 덕분에 고향 햄프셔와 5년간 머물렀던 바스, 남부 해안의 여름 휴양지 라임 레지스, 소설 속 다아시의 저택이 있는 셰필드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오늘 공개한 새 10파운드 지폐에 제인 오스틴의 얼굴과 대표작 《오만과 편견》 속의 문장 ‘독서 말곤 어떤 즐거움도 없다’를 새겼다.

지폐에 새기기에는 좀 길겠지만 세계인이 공감할 명문이 또 있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명구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