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비리 수사는 역대 정권 출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인사를 청산하기 위한 단골 메뉴로 사용됐다. 정권 중후반기엔 군인을 비롯한 공직자 기강 세우기로 활용되기도 했다. 특히 방산비리 척결은 시기와 관계없이 ‘군피아(군+마피아)’의 비리를 밝혀 정권과 대통령 지지도 상승을 견인했다. 방산 수출액이 미미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적어 정권 차원에선 방산비리가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기 제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처음에 대대적인 수사 인력을 투입해 큰 성과가 있을 것처럼 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날 때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있었던 방산비리 수사가 단적인 예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10월 “방산비리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17일 발언과 대동소이하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사·자·방(4대강, 자원비리, 방산비리) 비리를 척결하려는 일환이었다. 박 전 대통령 발언이 있은 한 달 뒤 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출범했다. 검찰과 군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 100명의 인력이 투입돼 1년간 예비역 장성 10명을 포함해 74명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기소자들이 잇따라 무죄를 받고 있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과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도 집권 중반기 때 방산비리 수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를 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듬해 12월 대검이 방산업체 집중 단속에 나섰지만 용두사미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노무현 정부도 정권 초에 국방개혁의 핵심으로 방산비리 척결을 내세웠지만 방위사업청을 국방부의 외청으로 독립시킨 것 외에 수사 부문에서 큰 성과는 없었다.

그나마 김영삼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5·6공화국 비리’ 척결을 외치며 나선 율곡비리 수사가 성공적인 방산비리 수사로 꼽힌다. 율곡비리 사건은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 32조원이 투입된 군 전력 현대화 사업에서 정부와 군의 고위 인사들이 개입해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