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대 노조단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마치 자기들이 정권을 잡은 듯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에는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가 퇴출 대상 ‘적폐 기관장’ 블랙리스트를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기관장들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더니 아예 명단을 적시해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이런 식의 퇴진 압박은 인민재판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정권 교체로 공공기관장 물갈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하지만 기관장의 임기가 법으로 보장돼 있는 만큼 국민이 납득할 만한 원칙과 기준, 이유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양대 노총이 이를 무시한 채 특정 기관장들을 지목해 퇴진을 협박하겠다는 건 그 자체로 초법적 발상이다.

정권 때마다 되풀이돼 온 ‘낙하산 시비’는 그렇다고 치자. 양대 노총은 성과연봉제 도입 등 그동안 공공기관의 비효율성과 방만 경영을 시정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들조차 불법 또는 노조 탄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적폐 기관장’ 딱지를 붙이면 살아남을 인사가 없다. 더구나 앞으로 어떤 정권이 와도 공공개혁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정권 따라 개혁이 언제 ‘적폐’로 둔갑할지 모르는 판에 어느 기관장이 움직이려 하겠나. 노조는 노조대로 5년만 견디자며 저항할 게 뻔하다. 기관장이 경영을 잘한들 노조에 밉보이면 그것으로 끝이니 정부가 매년 시행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또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공공기관을 과거 공공노조의 ‘철밥통’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양대 노총은 이미 여권과 사전 접촉했다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우리는 공공기관장 교체가 리스트대로 진행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그대로 된다면 성과연봉제 폐지, 원점으로 돌아가는 철도개혁에 이어 정권이 양대 노총 주장대로 움직인다는 또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공공기관이 노조와 정치가 서로의 이익을 거래하는 거대한 ‘노·정 복합체’로 질주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