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점업계에 간만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롯데가 미국 DFS를 제치고 스위스 듀프리에 이어 글로벌 면세점 시장 2위를 차지했다는 것. 글로벌 면세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 최신호는 롯데면세점 작년 매출이 47억7000만유로(약 6조770억원)로 기존 2위 DFS를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신라면세점은 처음으로 5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관계자들은 웃지 못했다. 외신 내용을 인용해 보도자료를 낼 법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초상집에서 잔치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조용히 지나갔다”고 했다.

국내 면세점업계는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피해는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중국인 단체관광객 발길이 뚝 끊긴 탓에 국내 면세점업계 매출은 예년보다 20~30% 줄었다. 올해 국내 면세점 시장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는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관세청이 부당하게 낮은 점수를 줘 롯데가 월드타워점 운영권을 6개월간 빼앗겼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지만 특혜 의혹은 해소될 조짐이 없다. ‘롯데월드타워점 특허를 다시 취득한 것 자체가 특혜’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롯데 관계자들은 “검찰 수사를 받아서라도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까지 말한다. 롯데월드타워점이 ‘억울하게’ 문 닫은 6개월 동안 날아간 약 3700억원의 매출과 해고 불안에 시달린 임직원들에 대해선 책임 있는 사람 누구도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5년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롯데가 삼성전자와 같이 세계 1위에 올라설 수 있는 사업이 바로 면세점”이라며 “한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서비스 업종인 만큼, 더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투자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왔다.

면세점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아니다. 2015년 이후 새로 문을 연 면세점 중 이익을 내는 곳은 하나도 없다. ‘서로 누가 먼저 빠져나가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공공연히 돌 정도다. 면세점 선정 비리는 철저히 조사해야 하지만, 면세점산업을 어떻게 제대로 키울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비스 업종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할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