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그룹 경영진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일가에 430여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에 대한 39차 공판이 지난 14일 열렸다.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두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을 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주요 증인 심문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특검은 3개월이 넘는 기간 48명의 핵심 증인을 법정으로 불러내 증언을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스모킹 건·smoking gun)’가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특검 측 주장만 믿고 글로벌 기업 대주주를 5개월 동안 구속한 것은 한국의 수치”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1) 이재용, 부정 청탁했나

이 재판은 앞으로 약 한 달 후면 1심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이 부회장의 유무죄를 가를 핵심 쟁점은 뭘까.

재판부는 지난달 21일 31차 공판에서 “재판의 핵심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이에 따른 청와대의 개입 여부”라고 요약했다. 검찰이 이 부회장 측을 기소한 핵심 요지도 “이 부회장이 본인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최씨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다.

특검 측은 2014~2016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세 차례 독대 과정에서 삼성 측의 부정한 청탁이 건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독대 전 청와대 실무진이 작성한 대통령 말씀자료와 독대 후 대통령 지시사항을 기록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첩이 증거라는 것이다.

대통령 말씀자료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강화된다’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현 정부 임기 내 승계 문제가 해결되길 희망한다’ 등과 같은 삼성 측에 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다. 2015년 7월 2, 3차 독대 후 기록된 안 전 수석 수첩에도 ‘삼성, 엘리엇 대책’ ‘금융지주사 은산분리’와 같은 삼성그룹 현안이 기록됐다.

하지만 공판에 출석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특검이 제시하는 말씀자료는 사실상 참고자료”라며 “대통령이 면담 자리에 들고 가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 변호인 측은 “말씀자료를 독대 과정에서 직접 발언한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안 전 수석 수첩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수첩에 적힌 내용대로 대화했다는 점에 대해 (수첩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수첩을 직접 증거가 아니라 간접 증거로 채택했다.

(2) 청와대가 정부에 압력 행사했나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국민연금공단,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한국거래소 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금융위 공정위와 관련해 특검이 제시한 증거들은 이 부회장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법정에 출두한 청와대와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청와대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압력도 받은 바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계획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3차 독대가 있었던 2016년 2월15일 다음날인 16일 금융위 측이 삼성 측에 “원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한 사실이 드러났다. 실무 책임자인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위가 신경을 많이 쓰면서 보고했는데 안 전 수석은 매번 보고를 받고도 너무 관심이 없어 서운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합병으로 새로 생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삼성 측이 청와대를 통해 공정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특검 주장을 반박하는 증언도 다수 공개됐다.

(3) 승마 지원은 뇌물인가

삼성이 최씨 일가에 제공한 승마 지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느냐 여부도 핵심 쟁점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 측이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를 사전에 알고 최씨 일가에 승마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품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2015년 7월 2차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최씨 일가를 지원했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최씨가 받은 승마 지원금을 박 전 대통령이 받은 것으로 간주해 단순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법리 다툼이 치열한 쟁점이다.

특히 변호인 측은 “구체적인 승마 지원은 물론 금융위 공정위 관련 사안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특검 측은 이 부회장이 직접 개입하거나 공모한 증거를 하나도 내놓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좌동욱/이상엽 기자 leftking@hab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