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수명은 몇 살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6개월. 통상 한국에서 돼지가 태어나 식용으로 전환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다. 두 번째 답은 열 살이다. 돼지가 도축되지 않고 수명을 다할 경우다.

국내 돼지들은 대부분 6개월의 짧은 생을 산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채식주의자나 동물보호단체는 이를 문제 삼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돼지가 열 살까지 사는 농장이 있다. 경기 이천에서 ‘돼지들의 아빠’로 불리는 이종영 촌장(51·사진)이 운영하는 ‘돼지보러오면돼지’ 농장 얘기다. 국내에서 유일한 돼지박물관을 연 이 촌장은 이곳에서 1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운다.

식용 돼지가 아니다. 공연을 한다. 돼지보러오면돼지는 돼지박물관 겸 공연장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해피, 힘순이, 꿀순이 등 훈련된 미니돼지들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다. 장애물 뛰어넘기는 기본이고 고리 넣기와 축구, 볼링도 한다.

이 촌장은 “이곳에선 돼지가 주인공”이라며 “돼지의 의사를 우선한다”고 말했다. 그게 가능할까. 이 촌장은 “돼지들은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을 알아보고 절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훈련 방법은 철저한 인센티브 방식이다. 휴식도 자유롭다. 공연 시간은 돼지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 15분을 넘지 않는다. 이 촌장은 “돼지의 아이큐는 75~85 정도”라며 “3~4세 어린이를 대하듯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돼지가 발정기에 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공연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땐 돼지가 말을 안 듣는 게 공연 주제가 된다.

이 촌장은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한 뒤 줄곧 돼지를 키우는 일에 몸담았다. 1996년에는 직접 돼지인공수정센터를 창업했다. 우수한 씨돼지의 정액을 찾아다니는 게 그의 업무였다. “예전에는 양돈업이 혐오산업이었어요. 돼지 축사는 더럽다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이 촌장은 인공수정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찾은 영국과 독일 등의 양돈장에서 이 같은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실마리를 봤다. “해외 양돈장은 상당히 쾌적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혐오시설로 인식하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농장의 역사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독일에서는 세계 유일의 돼지박물관도 봤다. 이 촌장은 이때 박물관 설립을 결심했다. 해외 출장 때마다 돼지와 관련된 수집품을 사들였다. 그렇게 모은 조각상과 인형, 그림 등이 6800점에 달한다. 이 촌장은 2011년 수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열었다. 미니돼지를 키워 공연도 시작했다. 1년 만에 유료관객 2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6만5000명이 찾아왔다.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이 촌장은 돼지고기를 먹을까. 맛있게 먹는다. 이 촌장은 대신 행복하게 자란 건강한 고기를 먹으라고 당부했다. 돼지보러오면돼지에서 먹거리로 사용하는 돼지고기는 모두 성지농장 등 동물복지 농장에서 공급받는다.

일본 북부 미에현 이가시에 있는 모쿠모쿠는 일본에서 성공한 체험농장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 촌장은 이천 농장을 ‘한국의 모쿠모쿠’로 키우는 게 꿈이다. 돼지와 말, 곤충과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결합한 종합 체험농장을 구상하고 있다. 이 촌장은 이미 2만9100㎡(약 8800평)가량의 공간을 마련했다. 자연과 동물을 통한 치유도 그의 관심사다. 이천=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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