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주도권’을 이끌어낸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6~9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북핵 문제의 2단계 해법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북핵 동결→비핵화 대화→핵 완전 폐기를 골자로 하는 ‘신(新)베를린 선언’을 검토 중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이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9일 베를린자유대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간 화해를 이루자고 제안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다. 문 대통령은 이번 독일 방문 기간에 베를린 쾨르버 재단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한·중 관계 복원이 관건

한·미 정상회담 끝나니 이번엔 G20…'신베를린 선언' 나오나
문 대통령이 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는 적지 않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최대 관건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관계 악화를 서둘러 복원하는 일이다. 중국의 협력 없이는 북핵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서다.

문 대통령은 G20 행사 기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추진 중이다. 양국 모두 정상회담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성사 가능성이 높다. 두 정상 간 최대 현안은 역시 사드 배치 문제다. 중국 측은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는 우리 주권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중국 측을 설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사드 배치는 한국의 주권 사안이며 중국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경제보복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2일 저녁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및 시 주석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하며 북핵 문제와 G20 정상회의 의제 등을 논의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양측에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압박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중국에 철강수입 할당제와 관세 부과 등 새로운 무역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文 릴레이 정상외교

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직전인 5일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한다. 독일이 유럽연합(EU)의 맹주이자 EU 역내 경제 대국인 만큼 한국과 독일뿐 아니라 한·EU 간 유대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메르켈 총리와 만난 뒤엔 베를린에서 시 주석과 대면할 예정이다. 6일 저녁엔 독일 함부르크에서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와 함께 한·미·일 3국 정상회의와 만찬을 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 취임 후 한·미·일 3국 정상이 별도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이날 만찬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 형식으로 열린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베 총리와 양자회담이 성사될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3국 정상회의는 일본 측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위안부 문제나 독도 영유권과 같은 껄끄러운 주제를 처음부터 대놓고 다루기 어려워 일본에서 미국의 중재를 원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이달 말 한·중·일 3자 정상회의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과거사 반성을 요구하는 우리 측과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비록 의전상으론 환대를 받았지만 미국 측에 실리적으로 잃은 게 많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면 모든 게 엉켜버릴 우려가 있는 만큼 G20 정상회의는 더욱 세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