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인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그가 북한에서 핵 폐기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날 CSIS 행사엔 알렉산더 버시바우·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존 햄리 CSIS 소장,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 조너선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 등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 150여 명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체제 유지 보장을 약속하면서 “비핵화야말로 안보와 경제발전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이라며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외교 문제의 최우선 순위를 북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 둔 것은 역대 미국 정부가 하지 않았던 일”이라며 “이 사실이 북핵 해결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이 기회를 살리고자 한다”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조건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도 올바른 여건이 된다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북한과 대화할 것인가는 우리가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예를 들어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기로 약속하거나 북한이 미국 국민 3명을 석방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 조건을 지금 단계에서 분명히 이야기할 수 없으면 한·미 양국이 정세를 봐가며 결정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해선 ‘한·미 간 사드 배치 합의는 존중하되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종전보다 훨씬 유화적인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은 “나는 한·미 간 결정을 존중한다. 그러나 정당한 법 절차를 지키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한·미 동맹 발전에도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이 사드와 관련해 계속 압박을 가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스콧 케네디 CSIS 중국 관계 부소장과 이야기하면서 “사드 배치는 한국의 주권 사안이고, 한국의 주권적 결정에 대해 중국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드 보복을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를 최종 결정하기까지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나가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과도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손성태 기자/이미아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