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산학협력에 소극적인 대학으로 알려져 왔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중소 사립대학에 산학협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이지만 서울대는 국내 1위 국립대학으로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데다 캠퍼스 내에 학술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점도 한몫했다.

그랬던 서울대가 최근 크게 달라지고 있다. 서울대는 ‘2017 이공계 대학 평가’ 산학협력 및 기술실용화 부문에서 38점으로 전체 3위를 차지했다. 국공립대 중에선 KA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이공계 중심 대학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서울대 공대가 있다. 서울대 공대는 2015년 “야구로 비유하면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친 후 1루 진출에 만족하는 타자였다”는 통렬한 반성을 담은 백서를 출간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연구를 위한 연구’ ‘실험실 속 지식 생산’에만 골몰하던 과거에서 탈피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서울대 공대는 이후 혁신을 거듭하며 체질을 바꿔나가고 있다. 지난 4월 ‘전임교원 신규 임용, 승진 임용 및 재임용 업적기준’을 대폭 개정한 게 대표적이다. 논문·저서 출판 등 학문적 성과뿐 아니라 산학협력·창업 분야에서 올린 실적을 교수 업적 평가에 반영해 임용하고, 승진과 정년 보장에서도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론 논문·저서 출판 외에 △기술이전·자문 △산업체와 연구계약 △산업체에서 수행한 연구·컨설팅·강좌 △창업 이력 등을 실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안경현 서울대 공대 교무부학장은 “학계의 고질적인 논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대학으로 유입해 혁신을 가속화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공대는 작년 3월 논문 없이 산학협력 프로젝트만으로 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국내 최초 ‘공대판 MBA’인 공학전문대학원(공전원)을 개원했다. 공전원의 성공을 위해 박사학위 여부와 관계없이 업계의 ‘백전노장’들을 산학협력 중점교수로 임용하고 있다. 올 들어 곽우영 전 현대차 차량IT(정보기술)서비스사업부 부사장, 오병수 전 현대차 품질본부 부사장, 이봉환 전 현대모비스 연구개발본부 부사장 등 6명의 기업인을 교수로 영입했다.

기술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현장 기술 애로 지원을 위해 2014년 설립한 서울대 공학컨설팅센터는 대학과 중소·중견기업 간 산학협력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공학컨설팅센터엔 아이디어는 있지만 기술력이 부족한 기업인들이 고민을 안고 찾아온다. 300여 명의 서울대 공대 교수진이 이들의 고민을 풀어줄 컨설턴트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