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탈(脫)화력발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9일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원자력 정책 방향 전환’을 공식화함에 따라 ‘탈원전’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노후 화전·원전을 폐기하고 신규 건설은 중단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전기요금 상승을 부를 수 있는 탈원전 정책을 공론화 과정 없이 서두르는 게 옳은 것인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는 수급 문제가 중요한 만큼, 다른 대체 에너지원 확보 등과 결부해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논의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졸속으로 정책이 결정될 우려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원전정책을 다루는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에 에너지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도 논란이다.

◆전기료 상승 언급 없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등 원전정책 전면 재검토”를 내세웠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40년 후 원전 제로(0) 국가를 만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전기료는 얼마나 상승할지, 그 부담을 국민에게 지울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은 2011년 탈원전을 선언하고 2022년까지 17기의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원전 9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전기료에 붙는 재생에너지 분담금이 ㎾h당 0.08센트에서 5.28센트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독일은 주택용 전기료가 ㎾h당 35.2센트로 8.86센트인 한국의 4배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독일의 주택용 전기료 상승률은 78%였다.

◆에너지 전문가 배제된 논의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에서 담당한다. 이 분과 위원 중 에너지 전문가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행정고시 24회 출신인 이개호 위원장(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공무원 생활 대부분을 전남도청과 행정자치부에서 보냈다. 같은 당 김정우 의원은 기획재정부 공무원 출신으로 국고국 계약제도과장 등을 지냈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 강현수 충남연구원장 등도 전공이 에너지와는 거리가 멀다.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언론개혁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은 기획분과위원이지만 경제2분과 회의에도 참석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출신인 홍 의원은 외교와 통일분야 전문가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에너지정책을 이념이나 정치적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며 “안정적 수급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새 정부 들어 목적과 수단이 바뀐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책 결정으로 몇십조원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데 전문가는 배제한 채 시민운동가와 국회의원 몇 명의 얘기만 듣고 결정하면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천문학적 매몰 비용 불가피

문 대통령이 공약한 원전 폐쇄를 위해선 천문학적인 매몰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신고리 5·6호기는 공정률 28%를 기록하고 있는데 들어간 공사비용만 1조5200억원(4월 말 기준)이다.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울산 남을)에 따르면 △지금까지 투입된 자재비·건설비와 계약해지에 따른 보상비 2조5000억원 △지역상생 지원금 집행 중단 1500억원 △지역 건설경기 악화와 민원발생 비용 2700억원 △법정지원금 중단 1조원 △지방세수 감소 2조2000억원 등 총 6조원의 직·간접적 손실이 발생한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