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모터스(GM) 포드자동차 시스코시스템스 코카콜라 등 미국 주요 제조업체가 잇달아 감원에 나서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 창출과 유지에 진력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반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미국 기업들로선 경쟁력을 높이려면 감원 등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 멕시코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이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흔들리면서 미 기업들이 제 갈 길을 찾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영 위기에 잇따른 감원

2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에어컨 업체인 캐리어는 인디애나폴리스 공장 근로자 1400여 명 중 632명을 오는 7월까지 감원하겠다고 인디애나 주정부에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멕시코 이전설이 나돌던 이 공장을 찾아 “캐리어가 인디애나에 남기로 했다”며 “일자리를 지킬 가능성은 100%”라고 밝혔다. 그는 캐리어의 공장 이전 포기 대가로 10년간 총 700만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약속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공장 이전 및 자동화로 감원이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븐 모리스 인디애나폴리스 공장장은 주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이번 감원은 급변하는 사업에서 기업이 직면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리어는 최저임금이 하루 3달러90센트로 미국의 3분의 1수준인 멕시코 몬테레이로 공장을 옮길 것으로 전해졌다.

포드자동차도 지난 17일 미국 아시아 등에서 사무직 14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력 제품인 픽업트럭의 미국 내 수요가 둔화돼 생산 축소 및 감원 외에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다는 분석이다.

같은 날 통신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스도 1100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코카콜라는 지난 4월 본사 직원의 20%인 1200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음료시장 변화로 매출이 4년 연속 감소해서다.

GM은 3월 미시간공장 직원 11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미시간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구모델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압박하던 트럼프의 위기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수입품에 국경조정세를 매기겠다며 미국 기업의 본국 유턴을 독촉하거나 해외 이전 계획 철회를 압박해 왔다. GM은 1월 10억달러를 투입해 1500명의 신규 일자리를 미국 내에서 창출하겠다고 발표했고, 애플은 이달 초 미국 내 제조업을 지원할 10억달러 펀드를 출범시켰다. 미 기업들의 감원도 올 들어 넉 달간 16만여 명에 그쳐 전년 동기보다 35% 감소했다.

그랬던 기업들이 감원에 나서고, 공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에서 밀리고 적자를 내는데 고용을 늘릴 수만은 없다고 판단해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시간 오하이오 등 제조업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서 큰 득표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들을 압박해 왔지만 고용을 창출하려면 결국 본원적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세탁기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인 삼성전자는 미국의 1인당 평균 인건비가 멕시코의 여덟 배에 달해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국경조정세 도입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마저 23일 “국경조정세는 오히려 미국 내 소비자에게 큰 비용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역시 폐기보다는 개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 기업들이 국내에 머물 유인이 줄어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 약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포함한 측근들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러시아 스캔들’과 이를 수사해온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한 파문이 이어져 지지율이 급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반(反)이민 행정명령도 25일 연방법원에서 막혔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