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시한을 9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지만 국제 유가는 오히려 5% 가까이 급락했다. 감산량 확대와 같은 보다 적극적인 가격안정 대책을 원한 투자자들이 실망 매물을 쏟아낸 결과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6월물 가격은 전날보다 4.8% 하락한 배럴당 48.90달러를 기록했다. 1주일 만에 5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런던ICE 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7월물 가격도 4.6% 내린 배럴당 51.46달러에 마감했다. 모두 지난 3월8일 이후 하루 기준으로 최대 하락폭이다.

이날 OPEC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회의를 열어 다음달 끝나는 감산시한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올 1월부터 시행한 하루 120만 배럴 감산체제는 유지하기로 했다. 러시아 등 비(非)OPEC 회원국도 하루 60만 배럴 감산을 계속 이행하기로 했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감산시한을 1년 연장하거나 감산량을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현재로선 9개월 연장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감산시한을 연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격안정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셰일원유 생산이 늘어나더라도 산유국의 가격안정 시도를 무력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OPEC이 예측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투자자들은 OPEC 결정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제이미 웹스터 보스턴컨설팅그룹 에너지센터 소장은 “시장이 원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감산량”이라며 “미국의 원유 생산 증가가 OPEC의 감산 효과를 상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중순 이후 10% 이상 증가해 내년에는 1000만 배럴을 넘어설 것으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예상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