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당초 계획과 달리 통상 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외교부로 앞당겨 이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국정기획위는 24일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해 외교통상부를 부활하는 방안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 산업부로 옮긴 통상기능이 4년 만에 외교부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긴급한 통상 현안을 앞둔 상황에서 “선수를 바꾸는 게 옳은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약집에 없던 통상기능 이전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소한의 정부조직개편안을 제출하겠다”며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벤처부(部) 승격, 통상기능의 외교부 이관,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의 분리독립 등 세 가지 사안만 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켜 각 부처로 흩어져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중소기업 관련 기능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일원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처에 흡수됐던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을 독립시키는 것도 공약집에 들어 있다.

하지만 통상기능의 외교부 이관은 공약집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한 토론회에서 “통상부문을 산업통상자원부에 떼놓은 것은 잘못됐다”며 “통상부문은 다시 외교부에 맡기는 게 맞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평소 소신을 밝힌 것이 전부였다.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도 임기 초반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등 최소한의 부처 개편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임기 초엔 손 안댄다더니…통상기능, 산업부서 외교부로 전격 이관
◆통상 공무원 ‘멘붕’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달 말 워싱턴DC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연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 온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관가에서는 “FTA 재협상 논의를 앞두고 통상 주무부처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내년 국회에서 ‘2차 정부조직개편’ 논의가 있을 때 통상기능 이전 등이 다뤄질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 국정기획위가 전격적으로 통상부문 이관을 발표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친기업 성향이라고 평가받는 산업부의 힘을 빼기 위한 것이란 얘기부터 외교부의 로비가 통했다는 말까지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24명의 전직 외교관으로 구성된 ‘국민아그레망’을 운영했는데 이들이 통상기능 이전 등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기획위는 이날 통상기능 이전에 대한 외교부의 의견을 들었지만, 산업부 의견은 듣지 않았다.

산업부에서 통상부문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 통상공무원은 “한·미 FTA 재협상을 준비해야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가족들까지 데리고 세종시에 정착했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비용 등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찬반 의견 팽팽

전문가들 사이에선 통상기능의 외교부 이전을 두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한 통상 전문가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한·일 위안부 합의 등에서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 외교부가 미국 국무부에 이어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까지 상대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외교부 관계자는 “협상력이 중요한 만큼 외교부로 다시 돌아오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태훈/오형주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