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독일이 인프라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부강한지를 그 나라의 상품·서비스 수출에서 수입을 뺀 금액(경상수지)으로 판단한다. 경제학적으론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200여 년 전에 벌써 신빙성에 의구심이 제기된 중상주의적 관점이다. 아무튼 이런 관점에 따르면 세계에서 제일 강한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제일 큰 독일이다. 지난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2970억달러(약 334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8.6%에 달했다. 게다가 독일의 대미(對美) 흑자 규모는 650억달러(약 73조원)에 이르렀다. 트럼프의 공격 대상이 되기에 꼭 맞았다.

독일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일원으로 ‘환율 조작’을 하려야 할 수 없다는 점은 신경쓰지 말자. 독일이 미국의 수출에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나라이며 독일 정치인들이 유럽연합(EU)의 반(反)보조금 규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말이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희생양을 찾아냈다는 것뿐이다.

독일의 흑자 원인은 독일이 투자하는 것보다 소비를 적게 하기 때문이다. 독일이 환율을 조작하거나 수입 억제정책을 쓰기 때문이 아니다. 한 나라의 저축에서 투자를 뺀 것이 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에 상응한다는 것은 경제이론이 아니고 회계적인 정의다. 독일인은 그들이 생산하는 것에 비해 덜 쓴다. 그 차이가 순수출로 나타난다.

독일 저축률이 높은 데는 이유가 있다.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은퇴 후를 대비해야 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쓰기 위해 지금 자산을 모으려 한다. 독일 경제학자 중에도 유로화를 버리고 독일 통화를 평가절상하자는 이들이 있지만, 환율이 어떻든 지금은 저축할 때라는 독일인의 생각은 별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통화를 평가절상하는 것은 자본집약적이고 교역 대상인 상품에 투자할 유인을 떨어뜨린다. 또 더 강한 통화는 비(非)교역재의 상대적인 가치를 높여 서비스 부문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서비스 부문은 자본집약적이지 않다.

그러니 통화로 어떻게 해보려 하지 말고 저축과 투자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게 낫다. 이와 관련해 기독민주당(CDU)과 사회민주당(SPD)의 해법은 서로 다르다. CDU는 감세를 제안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대규모 재정 흑자(237억유로)를 기록하는 순저축의 주체임을 감안하면 말이 되지만, 독일 가계가 감세로 늘어나는 수입을 소비할 것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반면 SPD는 공공부문 재정지출 확대, 특히 인프라 투자를 선호한다. 제로에 가까운 저금리 환경에서는 공공부문 추가 투자가 민간 부문 투자를 몰아낼 위험성이 적다. 독일은 헬스케어·교육·통신·교통 부문 인프라를 더 구축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 대목에서 인프라와 공공서비스가 비교역재이므로 거기에 돈을 쓰는 것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줄이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완전고용 상태에서 정부가 비교역재를 만들기 위해 자원을 끌어간다면 가계와 기업은 교역재를 통해 자신의 수요를 충족시킬 방법, 곧 수입을 늘릴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왜 독일이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다. 세계 경제에 좋기 때문이다. 사상 최저수준 저금리가 보여주듯 세계 경제는 지금 투자가 부족하다. 남유럽에도 도움이 된다. 적절한 공공투자는 독일에도 이롭다. 생산성과 삶의 질을 높이고 불평등에 관한 우려를 완화하고, 경제적 취약 부문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세계 50위권 대학 중 독일 대학은 하나도 없다. 투자를 늘리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강의 경제’는 더 좋아질 수 있다.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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