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시점 따라 희비 갈려
손보사 "특약 갱신시점에 적용"
생보사 "주계약 만기에 맞추자"
3~5년마다 특약을 갱신하는 보험상품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놓고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가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2021년 도입되는 새로운 국제 보험회계기준(IFRS17)을 적용할 때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와 한국 금융당국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각 업계의 부채 부담이 수십조원씩 늘거나 줄어들 수 있어서다.
17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 주요 손보사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주도로 설립한 ‘IFRS17 준비 태스크포스팀(TFT)’에 “갱신형 보험상품에 대한 회계처리 기간을 주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 아니라 특약 갱신 시점으로 적용해달라”고 최근 공식 요청했다.
예컨대 30년 만기 주계약(건강보험)에 3년짜리 특약(실손보험)을 더한 보험상품의 미래 보험부채(보험사가 고객에게 내줘야 할 보험금 추정액)의 시가 평가 기간을 주계약 만기 시점(향후 30년)이 아니라 특약 갱신 시점(향후 3년)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손보사 상품은 실손보험 등 만기가 짧은 특약에서 손실을 내고 있는 만큼 시가 평가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계상 부채 부담이 커진다는 게 손보사들의 설명이다. 3년 뒤 갱신할 때 보험사에 유리하게 특약 계약을 변경하면 이후 보험사의 부채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가 평가 기간이 짧을수록 유리하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주계약이 바뀌지 않더라도 특약이 갱신되면 해당 보험은 기존 보험과 다른 새로운 보험계약이 되는 만큼 특약 갱신 시점으로 회계처리 기간을 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주계약 만기 시점으로 바꿀 경우 손보업계 전체적으로 회계상 부채 부담이 수십조원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생보사들은 보험부채 시가 평가 기간을 주계약 만기 시점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보사는 손보사와 반대로 암보험 상품 등 특약에서 이익을 내는 구조여서다. 따라서 주계약 만기 시점으로 시가 평가 기간을 늘려 잡을수록 회계상 장래 이익이 늘어나게 된다.
한 대형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보험부채 시가 평가 기간을 주계약 만기 시점으로 잡으면 2021년 기준 회계상 부채는 지금보다 줄어들고 오히려 회계상 자본 규모가 8조원가량 늘어나게 된다”며 “반대로 특약 갱신 시점으로 정하면 부채가 늘어나 자본을 확충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TFT는 양측 의견 차이가 워낙 큰 탓에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생보사와 손보사 상품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입증되면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만, 아직 IASB를 설득할 마땅한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TFT가 조만간 IASB에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문의하기로 했다”며 “워낙 첨예한 사안이라 IASB가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 경우 업계에 큰 파장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