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디지털의 덫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나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디지털 디바이드’를 겪고, ‘디지털 해저드’의 유혹 속에 ‘유리 감옥’에 갇혀 ‘디지털 치매’를 안고 산다.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21세기 현대인의 삶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서너 살짜리도 스크린만 보면 손가락부터 댄다. 뭐든지 화면을 손 대면 넘어가는 터치패드인 줄 아는 것이다. 이렇듯 스마트폰, PC, 태블릿, 인터넷, SNS 등 온갖 디지털 세례를 받고 성장한 세대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다. 그들은 자연스레 언어를 체득한 원어민(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디지털로 생각하고 말한다. ‘디지털 키드’ ‘본(born) 디지털’ ‘넷 세대(net generation)’도 같은 의미다.

나이에 상관없이 후천적으로 디지털 기술에 적응한 기성세대는 ‘디지털 이주민(immigrant)’이다.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옮겨다니며 창조적 사고를 하는 이들을 ‘디지털 노마드(nomad)’로 명명했다. 4차 산업혁명은 그들의 시대다.

하지만 각자 디지털 능력이 천차만별이라 필연적으로 ‘디지털 디바이드(divide)’가 생긴다. 디지털 능력과 정보의 격차가 경제적 격차를 낳는 것이다. 미래 세대는 ‘영어 디바이드’보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교육이 메워야 할 문제다. 반면 경영자들은 모럴해저드의 디지털 버전인 ‘디지털 해저드(hazard)’를 고민한다.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갖춰준 디지털 장비가 채팅, 쇼핑 등 딴짓에 안성맞춤이어서다.

어느덧 스마트폰 없이는 전화번호와 일정을 기억 못하고, 내비게이션 없이는 길을 못 찾고, PC 없이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스마트폰을 분실하는 순간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보면 가히 ‘디지털 치매(dementia)’라 할 만하다.

하루 중 디지털 기기 없이 보내는 시간은 잘 때 뿐인 듯하다. 디지털 사상가 니콜라스 카는 《유리감옥》에서 현대인이 디지털 스크린에 포획돼 깊은 사고가 마비됐다고 비판한다. 파편화된 정보가 난무하는 ‘유리감옥(glass cage)’을 탈출하려면 디지털 기기들을 잠시라도 끄고 심신을 해독하는 ‘디지털 디톡스(detox)’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최근 며칠 사이 랜섬웨어 공격으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악성코드로 많은 사람들의 PC를 마비시키고 이를 인질 삼아 몸값(ransom)을 요구하는 신종 컴퓨터 범죄다. 편리해질수록 안전성이 떨어지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똑똑한 바보’가 돼간다. 디지털의 덫에 걸린 느낌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