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학년도에 처음 시행된 수능은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쳤다. 첫해엔 1년에 두 번 시험을 치르다가 이듬해 한 번으로 수정됐다. 2008학년도엔 수능등급제가 시행됐다.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 공약으로 9등급으로 나눠 대학에 등급만 알려주는 제도였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동점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대량 재수 사태를 낳기도 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수능 절대평가를 전 과목으로 확대하는 안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잦은 제도 변화는 수험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라고 강조한다. 오는 7월에 발표할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만큼은 각계 의견을 듣고 숙고를 거듭해야 하는 이유다. 찬성론자들은 수능 절대평가제는 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말한다. 2019학년도만 해도 학생부(교과·종합) 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등 수능을 통한 대입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사교육 시장도 요동칠 전망이다. 예컨대 메가스터디 등 입시학원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재수학원도 마찬가지다. 재수생 대부분이 정시에서 수능을 통해 대입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변별력이 떨어진 수능을 대학들이 선발 전형에서 외면하면 재수·삼수생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찬성 - 암기식 주입교육 벗어날 계기…영역별 가중치땐 변별력 갖춰
교육의 경쟁·서열중시·승자독식 구도 바꿔야
2021학년도는 수능 개선의 중요한 호기이다. 무엇보다 학생 수가 급감한다. 올해 대학입학 세대의 출생아 수는 63만4790명인데 2021학년도 대입제도를 겪을 세대의 출생아 수는 49만2111명으로 올해의 77.5%로 줄어든다. 학령인구 급감은 우리 교육과 입시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동안 수능과 내신 상대평가를 통해 모든 학생을 줄 세우고 성공한 소수와 다수의 실패자를 양성했던 우리 교육의 경쟁·서열·승자독식 구조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 모든 학생의 역량을 키워야 할 책임이 더욱 시급해졌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4차 산업혁명이다. 이제는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와 문제해결력 등의 차원적인 정신기능, 즉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모두가 말하고 있다.
수능 개선의 출발점은 전 교과 절대평가 시행 여부이다. 수능 상대평가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과도한 경쟁을 조장한다.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문제가 어려우면 더 맞히기 위한 경쟁을, 문제가 쉬우면 틀리지 않기 위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잘하는 것이 중요한 시험이 아니라 다른 친구보다 잘해야 하는 시험이다.
둘째, 모두를 한 줄 세우기 위해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 수학만 해도 쉬운 수능을 운영하면서 변별력을 주기 위해 3~4문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극상 난도의 문제를 내고 있다. 이는 상위권 4%를 구별하고 만점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과한 난도의 문제는 공교육에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사교육에 의존하게 하는 문제 또한 유발한다.
셋째, 줄 세우기를 이유로 객관식 평가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는 깊이 있는 사고보다 정답 찾기 기술을 늘리는 데 교육의 목표를 두게 한다. 이는 깊은 사고력, 문제해결력, 창의성이 필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오직 변별을 위한 시험이다. 또 영어와 한국사는 이미 절대평가가 도입됐는데, 국어·수학·탐구는 여전히 상대평가로 남아 있다 보니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섞이면서 생기는 과목 간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몇몇 대학의 영어 영역 반영 무력화, 이로 인한 수학의 부담감 과중도 심각한 문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수능 개편안에서 전 교과 절대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반대 논리는 변별력 문제다.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학생을 뽑느냐고, 현재와 같이 응시생을 줄 세워 대학 서열에 맞춰 학생을 보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밖에 없어 항상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 논리대로라면 결국 대학 서열화가 해소되지 않으면 수능은 절대평가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상대평가 수능 점수에 따라 다시 대학 서열화가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이 같은 주장엔 만약 수능의 변별력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그것을 채우느라 대학별 고사를 허용하고 또는 구술면접 고사를 봐야 한다는 선입견과 전제가 깔려 있다.
이제 수능을 통해 전국 수험생을 모두 줄 세우겠다는 과도한 변별력 신화를 줄여야 한다. 영어나 한국사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9등급 절대평가 방식은 자격고사와는 다르다. 충분히 변별력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학이 모집단위나 전공 특성에 맞게 영역별 가중치를 둔다면 변별력은 좀 더 높아질 것이다. 외부 환경과 교육과정의 변화와 입시가 맞물리는 지금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수능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 - 수능 역할 줄어 내신경쟁 치열…사교육 경감 효과 보기 어려워
수능내용·측정방법·결과활용 개선에 초점을
수능 절대평가제는 언뜻 보면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수능 무력화가 가져올 파장과 대입제도 관련 문제의 뿌리를 따져보면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서 얻는 효과로 찬성론자들은 크게 세 가지를 든다. 학생들은 암기식 주입교육과 과도한 반복학습에서 벗어나게 되고, 가계는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학교는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절대평가로 수능의 선발 기능이 약화되면 내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내신까지 절대평가로 하면 대학들은 선발을 위한 제3의 기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수능, 내신, 본고사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부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제4의 새로운 기준이 생기면 학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절대평가를 통해 수능을 무력화하기보다는 수능의 내용이나 측정 방법을 다양화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다. 입학인원이 정해져 있는 명문대나 특정 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이 사교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평가제를 도입해도 풍선효과 때문에 사교육 경감이란 효과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대학을 향한 경쟁이 너무 치열해 단순히 대입제도를 미세조정하는 것만으로는 해법을 도출할 수 없다. 경쟁의 근본 원인은 심각한 청년 실업, 일자리 양극화·이원화, 복지제도 미비 등이다. 학생들은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하면 기초적인 행복추구권마저 보장되지 않는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실력주의에 내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선 형태가 어찌 됐든 대입시험은 최선을 다해 통과해야 할 관문일 뿐이다. 미래사회가 원하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려면 수능 절대평가 여부가 아니라 수능의 내용, 측정 방법, 결과 활용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능은 미래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 중에서 고등학교 단계에서 갖춰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웠는지,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췄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측정 방법을 논술형, 짧은 서술형, 단답형, 선다형 혹은 심지어 구술형 등으로 다양화하고자 할 때에는 실현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굳이 수능 절대평가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과거 예비고사제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나 학과가 요구하는 수능 등급을 사전에 제시하게 하고, 그 기준에 도달한 경우에만 지원 가능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정 기준에 도달한 학생을 대상으로 추첨하는 ‘범위형 대입제도’ 혹은 스위스처럼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정원에 관계없이 희망하는 학생 모두를 대학에서 받아주는 제도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입제도 문제의 상당 부분은 사회의 극한 경쟁상황이 대입이라는 벽에 비춰져 나타나는 그림자다. 즉, 대입제도의 변화만으로 여러 기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말이다. 일자리 양극화·이원화와 복지체제 개혁이 병행돼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수능 절대평가제를 비롯한 다양한 대입제도를 논할 때에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기대효과가 나타나기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를 먼저 따져보기 바란다.
박동휘/김봉구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