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M. 카니 / 아이작 게츠 지음 / 조성숙 옮김
자음과모음 / 420쪽 / 1만6000원
피아트 직원은 다음날 아침 파비 공장시설이 피아트 품질 표준에 적합한지 시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내내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파비 최고경영자(CEO) 장 프랑수아 조브리스트는 오후 7시에 퇴근했다. 피아트 직원이 오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마중 나갈 직원도 없었다.
크리스틴은 즉시 파비 직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업무용 자동차를 몰고가 손님을 호텔까지 태워다 줬다. 다시 회사로 돌아온 크리스틴은 세 시간 전 중단한 사무실 청소를 계속했다. 다음날 출근한 조브리스트는 피아트 직원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자초지종을 전한 피아트 직원은 크리스틴의 친절함에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그는 파비 품질 점수를 자신이 평가한 것보다 10% 높게 줬다.
브라이언 카니 리바다네트웍스 수석부사장과 아이작 게츠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ESCP) 교수가 함께 쓴 《자유주식회사》(원제: Freedom Inc.)에서 ‘기업 자율화’의 성공 사례로 소개된 에피소드다.
크리스틴은 어떻게 됐을까. 관료주의와 위계질서가 철저한 회사라면 크리스틴은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지 않고 괜한 일에 참견했다는 비판을 받고, 징계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그의 유연한 대처에 박수를 쳐줄 회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파비는 둘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파비 직원들에게 이런 결정은 이미 습관이자 예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해도 크리스틴의 이 같은 행동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1983년 CEO로 부임한 조브리스트는 비품실을 지날 때 한 근로자가 닫힌 창문 앞에서 낡은 장갑을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을 봤다. 당시만 해도 작업자가 새 장갑을 받으려면 조장에게 교환증을 받고, 작업장을 가로질러 비품실 벨을 누르고, 관리자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런 식의 관료주의와 그로 인한 손실, 비효율은 어느 곳이든 한두 부분이 아니었다.
조브리스트는 바로 비품실을 개방했다. 한쪽 벽을 허물고, 작업자가 필요하면 누구나 알아서 비품을 가져다 쓰게 했다. 그는 파비를 직원들에게 업무 방식을 일일이 지시하는 ‘하우(how) 회사’에서 일하는 이유와 목적을 알려주는 ‘와이(why)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모든 업무는 ‘고객 만족’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향하게 했다.
조브리스트는 복잡하게 얽힌 업무 방식과 규정을 자명한 목적과 이유로 대체했다. 작업장 시계와 관리자 조직을 없애고, 20여명으로 구성된 자율적 팀을 조직했다. 각 팀은 정해진 고객에게 정해진 제품을 제공한다. 팀원 투표로 뽑힌 팀장은 CEO에게 직접 보고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25년간 파비는 연평균 3%씩 제품 단가를 낮췄다. 수많은 유럽 부품공장이 문을 닫은 ‘세계화 시대’에도 경쟁력을 유지했다. 유럽산 자동차의 절반에 파비의 기어박스가 장착돼 있다.
저자들은 파비를 비롯해 3M, 고어텍스, 할리데이비슨, 자포스 등 다양한 업종의 세계적인 회사가 어떻게 기업 자율화 운동을 벌였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연구·추적해 이들의 성공 비결을 도출해냈다. 이 책은 일종의 기업 자율화 보고서다. 저자들은 이들 기업의 성공사례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심리학·경제학 실험과 이론을 검토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직원에게 자유를 줄 때 나타나는 자발적 동기 부여의 힘은 물질적 보상을 넘어서고,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이익과 성장을 가져다준다. 자유는 위대한 성과를 낳는다.”
기업 자율화는 단순한 경영전략이 아니라 경영철학이다. 기업 자율화를 추구하는 리더는 통제와 불신보다 자유와 존중이 중시되는 근무환경이 업무효율을 높인다고 믿는다. 리더가 보장한 자유 속에서 직원은 창의성과 잠재력을 발휘해 회사 성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업 자율화가 일부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미래의 업무 형태’라고 주장한다. 기업 주변 환경은 관료주의를 예찬한 막스 베버의 시대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들은 “직원 모두가 지닌 지식과 능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 시대”라며 “그렇게 되려면 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윗선의 허락 없이도 움직일 수 있도록 평소에 권한과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