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택지지구·신도시 개발이 중단되면서 디벨로퍼들이 구(舊)도심 땅을 잡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도심이 완성된 지 20~30년가량 지나면서 곳곳에 용도를 다한 건물 및 나대지가 많다는 점에 디벨로퍼들은 주목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처럼 낡은 건물의 용도 전환 및 재건축이 새로운 일감으로 떠오를 것이란 판단에 따라 도시재생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디벨로퍼, 눈에 불 켜고 '도심 땅 잡기'…여의도 MBC는 20곳이 경쟁
◆ 도심 부지 확보전 치열

서울 여의도 MBC 옛 사옥 부지 개발에 나선 MBC와 사업자 선정 자문을 맡고 있는 CBRE코리아는 지난달 잠재 후보자를 대상으로 투자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MBC와 CBRE는 다음달 2일까지 입찰을 받은 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부지 개발에는 디벨로퍼부터 건설사, 자산운용사까지 20여곳의 다양한 사업자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디벨로퍼의 경우 엠디엠(MDM), 피데스개발, 신영, 시티코어, 네오밸류, 에이엠플러스 등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건설회사 및 금융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제안서를 낼 예정이다.

많은 디벨로퍼가 MBC 옛 사옥 개발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5000억원에 달하는 땅값을 현금으로 내지 않아도 돼서다. MBC는 땅값 대신 완공된 오피스 건물을 대가로 받을 예정이다. 사업자는 오피스 건물에 대한 평가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토지비로 내면 된다. 총 사업비는 1조2000억원가량으로 예상된다. 한 디벨로퍼는 “시내에 이만한 규모의 큰 부지가 별로 없다”며 “주거시설 중심으로 공급할 경우 수익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아파트 재건축이 한창 진행 중인 서울 고덕택지개발지구(강동구 명일동) 내 한 상업시설 매각에도 MDM, 대명레저개발 등 여섯 곳의 디벨로퍼가 참여했다. 지하철 5호선 고덕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KT고덕빌딩은 건물 한 동 정도만 지을 수 있는 부지다. 그럼에도 2만여가구의 배후수요가 있는 초역세권이라는 점에서 디벨로퍼들의 주목을 받았다.

피데스개발은 최근 경기의 한 신도시에서 역세권에 자리 잡은 대규모 상업시설을 매입했다. 피데스개발은 이곳에 주거용 오피스텔인 아파텔과 상업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피데스개발 관계자는 “주변에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밖에 없다 보니 새 집에 대한 수요가 넘친다”며 “경쟁력이 떨어진 상업시설을 수요가 풍부한 주거시설로 바꾸는 게 개발 콘셉트”라고 말했다.

올해 매각 예정인 도심 내 부지가 많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서울 중구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용산구 이태원 옛 유엔사 부지, 경기 성남 판교지구 내 호텔부지 등이 연내 매각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 “도시재생이 새 먹거리”

디벨로퍼들이 도심 내 개발사업에 주목하는 것은 신도시·택지지구 공급 물량이 현저히 줄고 있어서다. 도심이 노후화하면서 재건축이나 용도 변경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 100년이 넘은 선진국 도심에선 이미 지속적으로 디벨로퍼들이 재생사업을 하고 있다”며 “서울 및 수도권도 재생이 필요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 앞으로 디벨로퍼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외곽 도시개발사업의 위험이 크다는 점도 도심으로 몰리는 요인이다. 한 디벨로퍼는 “민간 땅을 매입해 미니 신도시를 만드는 도시개발사업도 대안이지만 수많은 토지주와 협의해야 해 위험이 너무 크다”며 “도심 내 부지는 매각자 한 곳과 협상하면 돼 진행이 빠르다 보니 디벨로퍼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가 몰리면서 부지 매각가격이 치솟는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10여곳의 디벨로퍼로부터 매수 제안서를 받은 광진구 동아자동차 운전학원 부지 소유주는 돌연 매각절차를 중단한 뒤 새로 제안서를 받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예상보다 매수 희망자가 몰리자 부지 소유자들 사이에서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재입찰이 진행됐다”며 “결국 토지 소유주들이 원하는 대로 낙찰 가격이 두 달여 만에 500억원 오른 3500억원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