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입확대 카드로 대미 '통상빅딜' 준비해야
“사드배치 비용 10억달러를 한국이 부담해라.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든지 파기하겠다.” 지난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던진 폭탄선언이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우리를 당황케 하고 있다.

얼마 전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한·미 FTA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지만 ‘손질하겠다(reform)’는 수준이었는데 불과 2주 만에 ‘파기’라는 거친 단어가 미 대통령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의 안보협상과 한·미 FTA의 통상협상은 철저히 분리돼 별개로 다뤄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안보와 통상이슈를 하나의 협상패키지로 한국에 던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이 같은 돌출발언을 놓고 바싹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한 행보를 협상이론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 대선 때도 그랬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멕시코를 다그칠 때도 그런 독특한 트럼프식 협상으로 거칠게 나갔다. 미리 위협적 발언을 해 초기에 기선을 제압해서 유리한 협상고지에 선다. 막상 협상테이블에선 의외로 ‘통 큰 협상’을 하며 하나 양보하고 하나 받아내는 식의 ‘빅딜’을 해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것이다.

후보 시절 환율조작국이라 하면서 얼마나 중국을 나쁜 무역국가라고 몰아쳤는가. 4월 초 바싹 긴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플로리다로 갔을 때 크게 붙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중국으로부터 얻어낼 거 적당히 얻어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진핑을 좋아한다”고 하고 싹 돌아섰다. 물론 둘 사이에 환율조작국 지정, 중국 후려치기, 북핵문제 해결 등을 놓고 뭔가 빅딜을 하고서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트럼프의 돌출발언 배경도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허버트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이 엇박자는 치고 있지만 사드 비용 부담과 FTA 파기 가능성이라는 두 개의 협상카드로 한국을 절묘하게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지레 겁먹지 말고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흔히들 한·미 통상협상의 최대 이슈는 한·미 FTA 재협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FTA가 아니라 ‘한·미 무역불균형 해소’다. 그는 NAFTA, FTA 같은 지역주의를 불신한다. 미 대통령으로서 통상에 관한 철학은 간단하다.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보는 나라는 모두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도둑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중심이 돼 트럼프가 그렇게 좋아하는 100일 계획, 즉 ‘한·미 간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대미 수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수입을 늘리는 확대 지향적 계획이어야 한다. 펜스 부통령이 지적했듯이 한·미 FTA 발효 후 5년간 흑자가 280억달러로 두 배 늘었으면 그 해법은 간단하다. 향후 5년간 대미 흑자를 과거 수준으로 내리는 카드를 제시하면 된다. 우리에겐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이라는 히든카드가 있다.

당분간 통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챙길 것 같다. 우리도 트럼프식으로 빅딜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통계수치를 가지고 설득하려 든다거나 세련된 외교적 수사로 당장의 통상갈등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 계속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와 통상을 뒤섞어 한국과 ‘패키지 딜’을 하려 들 경우다. 지금처럼 정부의 두 기능을 분산하지 않으면 집중포화를 맞아 안보를 위해 통상이익을 양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악수를 둘 수도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5월에 인준돼 ‘한국 후려치기’가 본격화되면 통상협상의 기조가 과거의 다자·지역주의 협상에서 산업·에너지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한 산업통상으로 바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안세영 <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협상학 syahn@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