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시합에 두 명이 아니고 네 명이 한 번에 경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각 선수는 동시에 다른 세 선수를 상대해야 하므로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네 선수 중 세 선수가 힘을 합해 가장 뛰어난 한 선수를 공격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권투 실력이 가장 우수한 선수가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모든 권투 경기는 두 명의 선수끼리만 하도록 돼 있다.

권투를 가장 잘하는 선수를 결정하는 스포츠 경기와 가장 능력 있는 공직자를 선발하는 선거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지난 2월에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 교수는 필자의 스승인 에릭 매스킨 교수의 스승이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 중 한 분이다. 애로 교수는 젊은 시절 민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선거 제도를 연구했는데 놀랍게도 그 연구 결과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선거에서 국민이 가장 원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긴 한다. 1번부터 4번까지 네 명의 후보를 두 명씩 번갈아 짝지어 가면서 1 대 1로 투표한 결과 1번 후보가 2, 3, 4번 후보를 상대로 한 양자대결에서 모두 50% 이상의 득표를 한다면 1번 후보가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국민이 원하는 후보다. 즉 양자대결로 다른 모든 후보를 이기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렇게 1 대 1로 선거를 했는데 어떤 후보도 다른 모든 후보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그러면 당선자를 낼 수 없다는 것이 불가능성 정리다.

유권자는 가장 선호하는 후보를 뽑고 싶은 마음과 가장 싫어하는 후보를 낙선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선호하는 한 명에게만 표를 던지는 현재의 투표 방법은 자칫 대부분이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최근 여론조사는 단순히 선호하는 후보를 조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양자대결을 가상한 여론조사나 호감도와 비호감도를 조사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현재의 단순 다수결에 의한 선거 방식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는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해 보고자 하는 시도인 것 같다. 세상을 떠난 애로 교수가 최근 한국의 여론조사를 보면 “내가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잖아”라고 하며 빙긋이 웃을 것 같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