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들에 봄은 ‘경영평가의 계절’이다. 매년 3월부터 6월까지 정부로부터 경영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기관 살림살이를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일인 만큼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시기다.
올해는 예년보다 유독 긴장감이 높아졌다. 유례없는 조기 대통령 선거로 경영평가 성적표를 새 정부에서 받게 됐기 때문이다. ‘짠물 경영평가’가 정권교체 뒤 공공기관장 물갈이 근거로 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관장들은 좌불안석이다.

“올해 경영평가 결과 두렵다”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 대상은 공기업 30곳, 준정부기관 89곳 등 총 119곳이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단(단장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이달 초부터 대상 기관에 대해 현장실사와 기관장 인터뷰 등을 벌이고 있다. 현장실사 준비를 위해 평가단 교수들과 접촉한 공공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암울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 공기업 고위관계자는 “올해 경영평가는 예년보다 훨씬 박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들이 짠물 경영평가를 점치는 이유는 조기 대선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경영평가 등급은 새 정부 출범 후인 6월 중순 나온다.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으로선 물갈이를 위한 ‘명분’을 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인 셈이다. 경영평가에서 최하인 E(아주미흡)등급을 받은 기관장은 정부의 해임 건의 대상이다.

정권마다 ‘논공행상’ 수단으로 이용

과거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공행상과 ‘코드 맞추기’ 등을 이유로 기관장 물갈이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일부에선 뚜렷한 명분 없이 멀쩡히 임기가 남은 기관장을 교체하다 보니 잡음도 적지 않았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경영평가를 ‘MB맨(이명박 정부 인사) 솎아내기’에 적극 활용했다.

2013년 6월 발표된 경영평가 결과는 전년보다 훨씬 박했다. 2012년(2011년도 평가) 6명에 불과했던 기관장평가 D등급이 16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임기가 수개월에서 1년 이상 남은 기관장들이 책임을 지고 줄줄이 사퇴했다. 2013년 말까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 21개 중 11개 기관장이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인사 개입 여지 많아져

더욱이 올해 경영평가는 작년보다 비계량지표 비중이 높아져 ‘정권 뜻대로’ 평가할 여지도 그만큼 커졌다. 비계량지표 대 계량지표 비중이 전년 35 대 65에서 40 대 60으로 바뀌었다. 비계량지표는 계량지표보다 점수 받기도 까다롭다. 지난해 평가단 보고서에 따르면 비계량지표의 평균 득점률은 61.8%로 계량지표(84.6%)에 비해 크게 낮았다. 비계량지표 득점이 경영평가 등급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당장 올 연말이나 내년까지 임기가 남았지만 경영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관장들이 타깃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돈다. 일선 직원들 역시 짠물 경영평가가 성과급 등으로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기관별로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이 최대 수천만원씩 차이가 날 수 있어서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