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법인세 인하의 선순환 효과
세금은 인류의 공동생활과 역사를 같이한다. 초기에는 농산물과 보유 재산 중심으로 부과됐으나 오늘날에는 소득·소비·재산·유통으로 과세 대상이 확대됐다. 죽음과 세금은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공포다. 세금이 더 끈질긴 측면이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죽으면 형사소추가 끝나지만 세금을 피하려고 죽어봤자 납세의무는 상속인에게 승계되고 남긴 재산에도 상속세가 붙는다.

국민의 복지 욕구를 부추기는 선심성 공약으로 선거판이 뜨겁다. 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권자 주머니를 축낼 세금 인상 공약을 내놓을 ‘바보 후보’는 없다. 부유층 극소수에 적용할 소득세와 증여·상속세 인상도 거론되지만 세수 효과는 별로다. 투표권 없는 법인이 부담할 법인세가 가장 만만하다. 대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유보이익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황당한 공약도 등장한다. 유보이익은 결산서에 표시된 이익잉여금을 말하는데 회계 절차에 의해 산출된 계산상 수치일 뿐이다. 회계에 문외한인 법조인이 채권 확보를 위해 이익잉여금에 압류를 신청했다는 강의실 개그가 생각난다. 엄청난 규모의 이익잉여금을 계상하고도 부도를 맞는 사례마저 있다. 현금 보유와 유보이익의 혼동에서 비롯된 허망한 논쟁은 끝내야 한다.

법인세 과세 논쟁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주식회사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법인의 소득은 주주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배당을 수령하는 시점 또는 이익을 나눌 권리가 의제되는 시점에 소득세로 과세할 수 있다. 법인세를 부과하고 나서 주주 이익배당에 소득세를 다시 부과하면 사실상 이중과세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그로스 업(Gross-up) 방식(법인 원천소득에 대한 이중과세 조정 방식)에 의한 배당세액공제를 허용한다. 미국에서는 1909년 단일세율 4%의 법인세가 최초로 도입됐고 유럽 각국에서도 낮은 세율의 법인세가 다양하게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 법인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착됐다.

법인세는 세수 확보뿐만 아니라 경제정책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기업의 인건비 지출은 기계설비 투자금과는 법인세 효과에서 차이가 있다. 같은 금액을 지출하더라도 인건비는 당해 연도에 모두 손금으로 인정받아 법인세를 절감하지만 기계설비는 감가상각을 통해 내용연수 동안 나누어 인정되기 때문에 절감액의 현재 가치를 따지면 불리하다. 불리한 법인세 효과를 보상하고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미국에서 투자세액공제가 도입됐고 다른 나라로도 확산됐다.

노동력과 기계설비의 상대적 중요성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자동화로 노동 수요가 줄어들면서 일자리 부족이 세계 각국의 최대 현안이다. 일자리를 몰아내는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기계설비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는 억제하고 인건비 지출에 대한 손금 인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12.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칠레와 뉴질랜드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 법인세 인하 추세에 역행하는 ‘한국 홀로 인상’이 법인세 세수를 오히려 줄일 가능성도 있다. 최적 조세점을 넘어서는 과도한 세율로 인해 세수가 줄어드는 래퍼곡선(Laffer curve)이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인세 인상은 투자자본 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노동시장에서 고용 감소를 유발한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많다.

청년 근로자에게 지급한 급여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의 소득공제를 추가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법인세제 개선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면 증가한 임금이 소비로 연결돼 경기 회복을 앞당기고 실업급여 등 복지 수요가 절감된다. 일자리 창출로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하면 세수는 자동적으로 늘어난다. 현재 수준의 법인세율을 유지하면서도 일자리를 늘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자리 창출 페달로 앞바퀴를 돌려 세수 증대 뒷바퀴를 이끄는 법인세제의 선순환을 구현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