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주택·고시원 확 늘었는데
직장인·유흥업소 종사자는 떠나
◆강남 원룸촌 공실 ‘몸살’
서울 역삼동 논현동 등 원룸 밀집지역의 공실이 급증하고 있다. 역삼동과 논현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들 지역 전용면적 25~36㎡ 원룸주택의 공실률은 10~20%대를 기록 중이다. 테헤란로 업무밀집지역 배후 주거지인 이들 지역엔 직장인, 유흥업소 종사자, 학생 등을 겨냥한 원룸주택이 몰려 있다. 수요 기반이 탄탄한 데다 2009년 주차장 요건을 완화한 도시형 생활주택까지 등장하면서 원룸이 크게 늘었다.
특히 작년 하반기부터 공실이 급증하고 있다고 일선 중개업소들은 전했다. 역삼동 A공인 관계자는 “공실이 건물마다 최소 10%에서 많게는 20%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논현동 B공인 관계자는 “기존 세입자가 나간 뒤 바로 새 새입자를 못 들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길게는 6개월 가까이 집을 비워두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원룸 임대료 조정도 이뤄지고 있다. 이 일대 원룸 월세는 건축연도, 내부 인테리어 수준 등에 따라 적게는 월 80만원에서 많게는 월 120만원 선이다. 세입자 구하기에 나선 집주인들이 기존 임대료에서 10만원 정도 하향 조정하면서 월 70만~75만원짜리 매물도 등장하고 있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고
일선 중개업소들은 원룸이 공급 과잉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도시형 생활주택 등장이 원룸 과잉 공급의 주된 원인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1~2인 가구 증가, 전세난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2009년 주택법을 개정해 도입한 주택 유형이다. 건물당 300가구 미만, 가구당 전용면적 85㎡ 이하로 구성된다. 강남권에선 2012년부터 단독주택을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재건축해 임대사업을 하는 집주인이 많아졌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2012년 118가구이던 역삼동 도시형 생활주택은 작년 말 1189가구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논현동 도시형 생활주택도 69가구에서 1084가구로 늘었다.
주택임대 관리업체인 라이프테크의 박승국 대표는 “경기가 좋을 때 도시형 생활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다수 분양된 게 현재 공실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불경기인 지금은 역삼·논현동에 살던 임차인들이 월세를 아끼려고 주변부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 상가 건물도 원룸형 주택으로 개조되면서 원룸 공급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경기 침체, 불법 유흥업소 단속 등으로 공실이 생기자 건물주들이 레지던스, 고시원 등으로 바꾸는 곳이 속속 생기고 있다. 역삼동 J공인 관계자는 “장사가 안 되는 낡은 상가가 풀옵션 고시원으로 바뀌고 있다”며 “상가 건물 하나를 고시원으로 만들면 방이 30개씩 들어선다”고 전했다.
원룸 공급은 계속 늘고 있지만 수요는 거꾸로 줄어들고 있다. 2012년부터 본격화된 강남구청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불법 유흥업소가 문을 닫자 고급 원룸의 주 수요층이던 업소 종사자들이 방을 비우고 있다. 강남구청은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85개 업소에 철거명령을 내렸다. 오피스 공실이 늘면서 직장인 수요도 감소하는 추세다. 신영에셋에 따르면 강남권역의 올 1분기 오피스 공실률은 8%에 달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